다시 개인의 시대다. 개인의 귀환이라 할 만하다. 한때 미디어 산업의 주역으로 평가받았던 개인이 침체와 외면의 부침을 거치며 다시 미디어의 핵심 주체로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웹2.0이라는 마케팅 용어는 콘텐츠 생산자로서 개인을 재조명하는 계기였다. 참여와 공유, 개방이라는 이제는 진부해진 개념들은 기실 개인들의 폭발적인 역량을 지칭하는 것들이었다. 프로의 독점 영역으로 치부됐던 콘텐츠 제작을 아마추어가 대신했고, 이들의 공유, 개방 습관이 미디어의 흥망을 좌우하던 때가 웹2.0이라는 유행어가 등장하던 시기였다.
흐름을 반영하듯 <타임>은 2006년 올해의 인물로 ‘당신’(You), 즉 개인을 선정했다. 유튜브, 마이스페이스, 위키피디아를 근거 사례로 제시했다. 그리곤 이렇게 썼다. “개인들은 소수로부터 권력을 가져왔다. 개인들은 세상을 바꾸고 있을 뿐 아니라 세상이 변화하는 방식마저도 바꾸어 낼 것이다.”
당시 국내에선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그 어느 때보다 집중 조명을 받았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였던 김혜원씨가 <타임>의 지면을 장식할 정도였다. 기자의 영역을 넘보는 개인들 그리고 시민들에 의해 미디어 산업은 지각변동이 일어날 듯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개인보다는 미디어 플랫폼이 중심이 된 세상으로 흐름은 전환됐다. 아마추어는 다시 프로페셔널들에게 콘텐츠의 주도권을 넘겨줬다. 개인의 자유로움이 표현되던 공간이던 블로그는 트위터와 페이스북의 위세에 눌려 힘을 잃어갔다. 마이스페이스는 싸이월드처럼 쇠락의 길로 빠져들었고, 유튜브는 각종 음란성 영상과 복제 영상들로 가득찬 공간이라는 비난을 샀다.
국내라고 사정이 다르진 않았다. 2007년 3월 야후코리아의 UCC 동영상 서비스 야미가 서비스 중단을 선언했고 2009년에는 엠앤캐스트가 문을 닫았다. 2010년 네이버가 사용자 제작 영상 등록을 포기한 것은 결정타였다. 그나마 다음 티비팟이 명맥을 유지했지만 인기는 예전만 못했다.
잇따른 음란물 영상, 저작권 위반 등 법적 제도적 마찰이 맞물리면서 개인 창작 영역은 급속도로 위축됐다. 일각에선 관리 비용만 높고 신선한 콘텐츠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볼멘소리가 터져나왔다. 비즈니스의 관점에서도 개인의 창작물은 매력적이지 않다는 평가도 줄을 이었다. 한때 영화를 누리던 개인 창작물은 계륵 같은 존재로 치부됐다. 반대급부로 다시금 소수 전문 창작자가 주목받는 RMC(Ready Made Contents, 기성 제작 콘텐츠)의 시대로 회귀했다.
개인의 화려한 귀환
몇 년 간의 숨고르기를 거쳐 개인이 다시 부활했다. 그야 말로 화려한 귀환이다.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는 쪽은 개인 창작 동영상이다. 음란, 저작권 시비에서 벗어난 개인들은 모바일 시대를 맞아 저마다 개성있는 영상으로 프로들의 영역을 다시 파고들었다. 국내에선 양띵, 대도서관, 도티 등 게임 해설 영상을 중심으로 팬덤이 형성됐다. 이들은 단순히 개인으로만 남지 않았다. 지난 몇 년간 개인들은 자신의 전문성을 다지며 개인 창작물의 결점이던 저작권으로부터 보다 자유로워졌다. 절치부심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났다.
블로그도 다시 꿈틀대고 있다. 모바일 환경에 최적화된 블로그 플랫폼 미디엄이 개인 작가의 부활을 알렸다. 블로거닷컴을 구글에 매각하고 트위터를 창업했던 에반 윌리엄스는 또다시 개인의 글쓰기 문화에 열정을 쏟아 부었다. 그는 2014년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블로깅과 관련된 플랫폼이 지난 10년간 아무런 발전이 없는 것 같았다”며 미디엄을 내놓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아직 성공 여부를 단정짓긴 어렵지만 미디엄이 국내에 미친 영향은 결코 작지 않다. 다음카카오는 미디엄을 벤치마킹 해 ‘브런치’라는 모바일 블로그 플랫폼을 선보였다. 브런치와 미디엄은 페이스북의 성장세로 자취를 감췄던 개인들의 글쓰기 문화를 다시금 부활시키고 있다. 개인들의 창작을 지원하기 위해 개발된 네이버 포스트도 같은 맥락에서 탄생한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개인들이 다시 블로그로 자신의 창작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진 셈이다.
‘2세대 개인’의 등장과 증대된 역량
최근 주목받는 개인들은 2000년대 초중반에 등장한 1세대 개인들에 비해 한층 성숙된 면모를 갖추고 있다. 1세대 개인이 독립된 개인의 역량 발현에 관심을 뒀다면 2세대 개인은 동료간 네트워크를 중시하며 네트워크 파워를 배가시킨 성격이 짙다. 요차이 벤클러가 ‘네트워크의 부’에서 언급한 네트워크로 연결된 개인의 증대된 역량을 갖춘 개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벤클러가 언급한 네트워크로 연결된 개인은 웹과 테크놀로지와의 연결성을 주로 지칭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웹과 기술을 통한 연결에 더해 유사 창작 영역의 개인들간 연결까지 보태져 진일보한 성격을 갖기도 한다. 벤클러는 네트워크 정보경제가 개인적 자율성의 영역에 미친 영향을 설명하면서 “개인들은 타인들과 협력하거나 허락받지 않고 일할 때 더 커다란 역량을 발휘한다”고 말한 바 있다(Benkler, 2007/2015, 12~13쪽). 바로 2세대 개인들이 현재 빚어내고 있는 모습들인 것이다.
특히 수익 모델 등에서 1세대 개인들에 비해 세련된 접근을 지향한다. 멀티채널네트워크라 일컬어지는 MCN이 대표적이다. 1세대 개인들이 아마추어리즘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지속적인 생존 조건을 갖추는데 한계가 존재했다면, 2세대 개인들은 네트워크로 묶여 공동의 이해를 도모한다. 트레져헌터, 샌드박스네트워크처럼 개인 창작자들이 중심이 돼 법인 설립을 주도하고, 주변 개인들을 포섭해 동료간 협업 생산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시도가 2세대 개인들의 달라진 성격을 대변한다.
웹툰 분야도 다르지 않다. 2009년 등장한 누룩미디어는 증대된 역량을 갖춘 개인 웹툰 창작자들이 저마다의 이해관계로 뭉쳐 단일한 사업 모델을 창출하는 웹툰판 MCN 조직이다. 설립 초기 박철권, 양영순, 윤태호, 강풀 등 쟁쟁한 브랜드를 갖춘 개인 웹툰 작가들이 결합하면서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누룩미디어는 설립 일성으로 “현 만화 시장에 대한 불안함을 타파하고자 만화가들끼리 뭉치고 협력해 만화의 산업화를 준비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뿔뿔이 흩어진 개인 창작자의 한계를 넘어 네트워크로 묶고 엮어서 한층 산업화한 꼴로 시장에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공표한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개인 콘텐츠 큐레이터들의 네트워크도 주목을 받고 있다. 메이커스의 몬캐스트가 대표적인 사례다. 몬캐스트는 개인 페이스북 큐레이터를 연결하는데 성공했다. ‘세상에서 가장 웃긴 동영상’ 페이스북 페이지는 ‘좋아요’만 200만에 육박한다. 이런 페이스북 페이지를 연결해 몬캐스트라는 허브를 구축했다. 몬캐스트가 연결한 페이스북 페이지의 ‘좋아요‘를 합하면 2천만건이 넘는다. 몬캐스트는 자체 모바일앱, 페이스북 페이지 네트워크 그리고 기타 소셜 채널을 통해 자체 제작한 영상을 유통시키는 전략을 택함으로서 새로운 방식의 유통 허브를 구축하고 있다.
개인의 부활은 더 이상 존재를 무시하기 힘든 흐름이 되고 있다. 이들 2세대 개인들은 1세대 개인들과 달리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플랫폼 의존도도 이전에 비해 덜한 편이다. 협력의 네트워크를 통해 산업적 세련미도 갖췄다.
단절된 개인은 서서히 퇴장하고 연결된 개인이 미디어의 핵심 주체로 등장하고 있다. 어쩌면 타임은 다시금 ‘당신’을 표지 첫면에 올려야할지도 모른다. 아마 그때엔 당신(You)라고 쓰지 않고 ‘연결된 당신'(Networked You)라고 명시해야 할지 모른다. 이들이 앞으로 미디어 생태계를 어떻게 재편할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진진한 볼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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