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미대를 준비한다는 한 학생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디자인'이란 무엇인가요?
그가 알고 있는 디자인이란,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면서 손으로는 그림을 잘 못 그리는데 시각디자인과에 갈 수 있나요?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런 질문을 받고, 저는 잠시 '디자인'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과연 '디자인(design)'이란 무엇인가?
아주 옛날 인류문화의 시작과 함께, 디자인은 이미 존재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만들고, 형태를 변화시키고, 좀더 쓰기 편하게 그리고 좀더 강력하게 그릇이나 도구를 만들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그때는 모두가 디자이너였지요.
자기와 가족이 살기 위해서 그곳의 환경을 고려하고 적합한 재료를 사용해서 집을 지었습니다. 그 집은 해가 거듭할수록 더 튼튼하고 편리하게 발전을 거듭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인테리어나 건축디자인에 해당하겠지요.
그리고 처음에는 단지 수치심 또는 추위나 해충으로부터의 보호를 위해 입었던 옷도 점차 기능화, 형태화를 고려해서 새롭게 지어졌을 것입니다. 그것이 풍속과의 연계성을 갖고 신분과 지위를 대신하기에 이르렀겠죠. 이것이 패션디자인, 의상디자인의 시작이었습니다.
또한 처음에는 농사나 사냥을 위해서 더 나아가서는 전쟁을 위해서 도구들과 무기들이 만들어지면서 공업디자인, 제품디자인이 시작되었습니다. 좀더 나은 방법을 연구하며, 손잡이도 만들고 도구 끝의 모양도 용도에 따라 변화를 주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때로 꼭 기억해야 할 것들을 종종 잊어버리곤 합니다. 그래서 인간을 '망각의 동물'이라고도 하는가 봅니다. 이를 위해 사람들은 소중한 곳을 묻어 두거나 표시하기 위해, 간략한 지도나 표지판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것이 공공을 위하여 필요하게 되면서 정보디자인으로 발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래픽디자인은 어떻게 시작했을까요?
역사에서 찾아 본다면, 동굴의 벽화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겠습니다. 사람은 기록을 하고, 자신을 나타내고,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그림을 그림으로써 상대방 또는 다수에게 자신의 뜻을 전달했습니다. 이것은 편집디자인 즉 에디토리얼 디자인의 시작입니다.
그것에는 동물도 등장하고 산이나 바다 등도 등장합니다. 이것과 더불어 자신만의 '표식'을 만들어 자신의 영역임을 나타내었는데 이것은 로고디자인 즉 아이덴터티 디자인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영역뿐 아니라 자신의 그릇이나 도구 등의 소유 물건에 특유의 색이나 표식을 해둠으로 패키지의 개념을 발전시켰습니다. 이것들이 바로 그래픽디자인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듯 지금 우리가 말하는, '디자인(design)'들은 과거에는 어떤 특정한 부류에서 하는 고유의 업무가 아니라, 우리 삶 속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것들이었습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위에 언급한 디자인의 세분화가 이루어졌고, 각기 전문분야로 세분화되지 않고서는 사회가 이미 너무 커져 있었기 때문에 이제 디자인이라는 말은 매우 일반적인 말이 되었고, 세분화되어서 위에서 언급한 그래픽디자인, 패션디자인, 공업디자인, 건축디자인, 정보디자인 등으로 세분화되었습니다.
각각 다른 매체와 확고한 영역구분을 가지고 계속 발전 진화해 나갔기 때문입니다. 그중 그래픽디자인도 이제는 일반적인 단어가 되었습니다.
위에서 조금 언급했지만 그래픽디자인도 세분화되어, 책, 포스터, 브로슈어 등 인쇄물을 디자인하는 편집디자인, 회사의 로고, C.I(Corporate Identity), B.I(Brand Identity)등을 디자인하는 아이덴티티 디자인, 상품용기 및 제품 포장 등의 패키지 디자인, 매체와 기능에 따른 글자꼴을 연구하는 폰트디자인, 그리고 인터넷상의 웹디자인 등으로 나누어집니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난 것은 과거에서는 그 맥락을 찾아보기 힘든 것의 도래로 인하여, 지금 디자인의 개념이 매우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인터넷'의 등장인데 과거 '국지적'으로만 전파되었던 '문화'가 실시간으로 지구 전체로 전달되므로 디자인의 속도도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여 전 세계 디자이너들이 서로 공유하며 디자인의 흐름을 이끌어 간다는 것입니다. 바로 인터랙티브(interactive)한 매체의 등장으로 인해, 디자인을 할 때 우리가 과거에 생각했던 것에서 인터랙티브 한 즉 상호작용을 고려하는 디자인까지 영역이 확대되었습니다.
이것은 전통적인 디자인에도 영향이 미쳐, 과거의 순수미술(Fine Art) 같은 일방적인 사고개념으로의 디자인 접근은 이제 점점 서로 공유하고 상호작용하는 디자인의 사고형태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한자의 사람 인(人)을 보면, 두 사람이 서로 기대고 서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이렇듯 사람은 서로 교통하기를 원합니다. 즉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서로의 의사를 주고 받으며 살아가는 것 입니다. 바로 인터랙티브(상호작용)의 실현이지요. 이렇듯 인간의 본성을 실현하기 위해 디자인은 계속 변모하고 있음을 또한 우리는 주지해야 할 것입니다.
기호학자인 슈타로(Mukai Shutaro)는 기호과정의 의미를 내포하는 디자인 개념에 관한 언급에서 'design'을 'de'와 'sign'으로 성립된다고 보았습니다. 'sign'은 원래 '특징', '성질', '범위', '차이' 그리고 '구별' 등의 의미를 나타내며, 'de'는 '완전히 한다', '정한다' 그리고 '명확히 한다' 등의 의미의 접두어이므로 따라서 'design'의 어원적인 의미는 물건의 '특징 또는 성상'을 '정한다'든지 물건의 '범위나 구별을 명확히 한다'입니다.
즉 우리가 어떤 현상이나 물건을 볼 때에 그것을 좀 더 확실히 표현해서 나타내고자 하는 인간본성의 실현을 위한 작업이 곧 디자인인 것입니다. 과거 우리 삶의 모든 것이 디자인일 수밖에 없었던 것도 바로 이런 인간본성의 실현이 곧 디자인이기 때문입니다. 디자인은 단지 그림을 그리는 것이나 예쁘게 치장하는 것이 아니며, 인류에게 있어서 삶으로 직결되고, 인간의 욕구의 실현을 위한 통로인 것입니다.
곧 디자이너는 인류역사 문화발전에 있어, 보이지 않는 공신이며, 없어서는 안 되고, 또 없을 수도 없는 존재입니다. 즉 디자인을 한다는 것은 곧 인류에 공헌하는 일이며, 미래 우리 다음 세대에게 더 나은 미래를 안겨주는 것입니다.
디자이너 스스로 지금 하는 자신의 디자인이 남 보기에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절대 실망하거나 용기를 잃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여러분들의 디자인 하나하나는 이 시대를 통과하는 한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의 디자인은 분명 이 시대의 클라이언트(Clients)와 디자인을 하는 것이지 과거 시대의 디자인을 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여러분들의 디자인이 없으면 바로 다음 세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러므로 지금의 여러분들의 디자인이 이 시대를 이끌고 있는 디자인이며, 이 시대의 디자이너로서 여러분들의 디자인이 세상에서 인정받고 못 받고를 떠나 꼭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즉, 매우 소중한 인류문화의 소명이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이 시대의 디자인을 하는데 있어서는 먼저, 우리의 마음가짐을 새롭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하고 있는 디자인이 남의 디자인을 카피를 통해 반복하고 있는가? 아니면 내 안에서 새롭게 나오되 다음 세대의 통로로 이어지는가? 한번 자신의 디자인을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디자인이란 그리거나 색칠하는 표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가 말하는 우리 시대의 인간들의 본성을 실현해 나가는 작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디자이너들은 인류에 대한 사명감을 가지고 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디자이너 모두가 그런 사명감으로 우리의 디자인에 임했을 때, 우리는 기쁨으로 임할 것이며, 나의 디자인 한 획이 바로 우리 다음 세대에 이어질 것 입니다.
다음 세대로 통하는 통로... 바로 우리 디자이너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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