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오늘의 디자인은 혹시 유효기간이 지난 건 아닐까? 그간 디자인을 통해 스타일과 브랜드, 부가가치, 시장 등을 혁신하려고 했던 20세기의 디자인 목표는 과연 충족되어 왔던가?
잠깐 멈추어서 숙고하면서 21세기의 디자인에 대해 똑같은 목표를 설정해야 하나 자문해 보아야 할 시간에 이르게 된 것 같다. 인간의 환경은 이제 많은 부분이 자연이 아니라 인공적인 것에 가깝다.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이 디자인에 의해 계획된 메트로폴리스에 거주하고 있다.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디자인은 21세기에도 계속하여 필요한 것일까, 아니면 더 이상 불필요한 것일까?
적나라하게 얘기해 보자면, 디자인은 이제 환경오염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되어 버렸다. 디자인 프로세스에서나 그 결과물 가운데는 디자인의 본래적 의미나 가치,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우리의 환경을 파괴하는 속성을 지닌 것들을 수도 없이 찾아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많은 디자인 제품들은 특수한 용도나 건전한 목적을 상실한 채, 마치 쓰레기나 해안가의 표류물들처럼 이 세계를 가득 채우고 있다. 이상하게 디자인된 제품들이나, 요구한 대로 설계되지 않은 물건들, 우리의 신체나 자연환경에 해로운 소재로 만들어졌다거나, 사용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버려진 수많은 사물들은 우리 주위에 잔뜩 있다.
자동차나 다른 운송 수단, 컴퓨터, 조명 기기, 의자에서부터 옷이나 포장, 음식과 장난감들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수많은 신상품들에 중독되어 있다. 그 결과로, 우리는 혁신적이고도 안정적으로 작동이 잘 되는 제품들에 대해 더 이상 예전처럼 경이로워한다거나 만족스러워하지 못한다.
화제를 살짝 바꾸어 보자. 아이폰(iPhone)은 기념비적인 사용자 디자인으로 신기원을 이루었다. 그렇지만, 그 매끄럽고 반짝이는 제품의 표면은 일상적인 사용만으로도 쉽사리 오염된다. 때문에, 많은 이들이 부가적으로 보호용 플라스틱 외장재를 구입해 쓴다.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디자인이란 바로 이런 것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질 좋은 가죽 의자처럼 세월이 쌓이고 추억이 깃든 제품들은 왜 찾아보기 힘들까? 왜 사람들은 사랑을 듬뿍 받은 스케이트보드처럼 아름답게 녹슨 제품보다는 반짝이는 신제품을 좇는 것일까? 할머니가 유품으로 남기신 아름다운 브로치나 인생을 행복하게 사신 할아버지의 주름진 얼굴처럼, 낡은 물건도 아름답다는 생각은 하기 힘든 것일까?
많은 디자인 평론가들이 최근 지속가능성이나 에너지의 효율성 같은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이는 풍요로움 속에서 다른 한 편으로는 잉여물들이 넘쳐나고 있다는 실태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의 변덕스럽고도 기이한 기상 상태와 같이, 디자인 생태계 역시 균형이 깨지려는 티핑 포인트 상에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또한, 나쁜 디자인이 만연함에 따라 좋은 디자인 역시 그 영향을 받아 급속한 변화의 쓰나미 속에서 그 가치가 낮아지고 있다는 사실 또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 심각한 이야기의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1. 디자인 오염(Design Contamination)
프롤로그에서도 누차 이야기했다시피 우리는 오염 지점에 도달했다. 디자인 오염이라, 어쩌다 이러한 일이 일어났을까? 과연 오염의 수준이나 손상된 상태 등을 되돌릴 수 있는 것일까? 이 쟁점은 어찌 보면 디자인의 성공 역사에 관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디자인은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머나먼 길을 걸어왔다. 방대한 디자인은 고작 백여 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면밀한 계획을 짜고 모양을 잡으며 인간의 편리를 위해 모종의 솔루션을 제공하려는 디자인 행위는 결과적으로 인공물이 부유하는 환경을 제공해 버렸다.
자연환경이란 그 긴 시간 동안 어떤 쓸데없는 것도 만들지 않고 이 세상을 끊임없이 향상하며 아름답게 가꾸어 왔다. 때문에 근래에 등장한 이 디자인이라는 행위는 거시적인 시각에서 볼 때 오히려 문제의 소지가 있는 것에 가까운 것으로, 우리 인간이나 자연의 요구에 부응하는 수단이 아닌 측면이 많다.
전문가들은 디자인의 이런 측면에 우려를 나타내 왔다. 그런데 왜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은 디자인이라는 생산 행위가 빚어낸 잉여물들에 그다지도 관대한 것일까? 디자인이 순수하고도 아이디어 넘치는 창조적인 실험적 행위라서?
물론 아이디어란 상상력의 증거로 인간성의 표상 같은 것이다. 그러나 모든 아이디어가 실현되어야 하는 것만은 아니다. 더욱이 그것은 디자인의 결과물로 제 모습을 가장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디자인의 순기능에만 만족할 시대는 지났다. 디자인 오염의 문제와 현상을 직시하고, 그간의 디자인 만능주의를 재고해 보아야 한다. 어쩌면 20세기 디자인의 영웅들과의 연결 고리를 끊는 혁명이 필요할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면, 인류는 곧 넘쳐나는 디자인 제품들 속에서 그 폐해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다음은 이러한 비극적인 결말을 피하기 위해 받아들여야 할 진실들이다.
1. 디자인은 수많은 양의 시각적 공해물이 된 지 오래다. 진짜 필요한 것과는 하등 상관이 없는 불필요한 물건들을 엄청나게 많이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디자인은 특정한 테마를 다양하고도 끝없이 변주하는 형태로 등장하곤 한다.
2. 디자인은 그간 과열됐던 감이 없지 않다. 잠시 멈춰 서서 디자인이 인류의 삶에 보탬이 되며,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찾도록 숙고해야 할 것이다. 깊게 고찰하기 위해서는 잠시 멈추어야 한다. 이것은 인간의 가치와 정체성을 다시 규명하기 위한 것이며, 브랜드나 신제품, 레디메이드나 싸구려 등을 무조건적으로 소비해 온 인류의 역사를 반성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나아가, 디자인에 감성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일상의 안식을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3. ‘책임감 있는 디자인’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일을 하는 것을 말한다. 단기적인 이익 대신, 장기적으로 가치를 얻을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이익에 집착하는 탐욕을 버리고 관대함을 기반으로 미래를 가꾸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4. 최신의 디자인으로 반짝이는 신제품을 사는 것은 제품으로 인해 갖게 되는 만족감의 한 단계일 뿐이다. 디자인의 나머지 단계들은 결국 사용과 연식에 관계된 것이다. 이는 곧 제품이 세월과 함께 하는 것이라는 걸 의미한다. 소비를 계속하며 조금이라도 낡은 것은 버리는 그런 행위들은 더 이상 세련된 사람으로 보이게 하지도, 글로벌 경제 위기의 타개책이 되지도 못한다. 이는 결국 재화와 인간성을 고갈시키는 행위밖에 되지 못한다.
5.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트렌디하고 새로운 제품을 구매하는 것은 더 이상 세련된 라이프스타일이 아니다. 지구 저 건너편에는 음식이나 재화로부터 굶주려 있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반대로 이 풍요로운 세상에 살고 있는 어떤 이들은 과도한 낭비에 휩싸여 비만으로 살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이 경제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정당한 것인가? 사실 인류는 단순한 생활과 여유로운 시간, 좋은 인연에 목말라 있다. 이제 사람들은 온화하고 건강한 아이디어와 무책임하지 않은 생산자들, 똑똑한 상품을 필요로 하고, 정말로 꼭 필요한 단순한 기능의 물건들을 소비하고 싶어 한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우리가 욕망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더 이상 만들어 낼 필요가 없다.
결론은 더 좋은 디자인을 연구하려 하지 말고, 꼭 필요하고 그래서 중요한 디자인을 선보이라는 것이다.
2. 문화적으로 연결된 디자인(Culturally Connected Design)
그렇다면 꼭 필요하고 그래서 중요한 디자인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진심이 머무는 디자인을 말한다. 진실한 마음과 창조적인 아이디어, 집단 기억력을 토대로 하는 진심. 디자인 행위는 강력한 인간성의 발로이지만, 논리적인 사고가 선행되어야 한다. 디자인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인간의 삶을 보다 윤택하고 강한 것으로 만들어 주어야 한다.
디자인이 인간의 요구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가치 없는 것에 불과하다. 디자인 제품은 뚜렷한 용도가 없을 때에는 괴상한 물체로 전락하고 만다. 최고의 디자인이란 사회적인 트렌드나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포착해 이를 성공적으로 반영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낳는 것을 말한다. 이는 인간적인 가치나 문화적 정체성을 존중하는 진심 어린 통찰력을 통해 가능하다.
이쯤에서 디자인의 DNA를 변경할 필요도 있다. 그간 디자인이 심혈을 기울여 온 명제인 혁신과 발명, 산업 등에 관심을 쏟는 대신, 인간성이나 겸손함, 동정심, 공감, 아름다움 같은 것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기존의 규범을 초월해, 지금보다 이 세상이 더 좋은 곳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변모의 방향이다.
디자인은 더 이상 라이프스타일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라이프사이클에 관한 것이다. 디자인은 애매함이나 모순조차도 이해하고, 단일성보다는 다양성을 지향해야 하며, 배척하기보다는 포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디자이너인 나오토 후카사와(Naoto Fukasawa)는 이러한 종류의 디자인 철학에 관해 최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내 역할이 우리의 삶을 향상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미래에 무엇이 일어날지 예견하기보다는 현재의 삶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우리가 처한 현실 속에서 더 나은 것이 무엇 일지를 숙고하기 시작했다.” 이 인터뷰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곳에 대한 디자이너의 관심을 보여주는 일례다. 그는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땅바닥에 귀를 기울여, 우리의 삶에 감각과 의식을 다시 가져다주었다.
인간은 이제 물리적인 욕구보다 정신적인 요구에 가치를 두는 새로운 이야기(narrative)를 필요로 한다. 인류와 공간이 지니는 관계성은 새로이 탐구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이야기를 통해 가능한 것으로, 이야기란 어제를 회상케 하며, 문맥을 재형성하는 힘을 갖는다. 끊임없이 구전되는 옛날이야기를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인류의 문화에 관한 집단 기억은 새로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우리의 일생을 반추하고 또 그 가치를 새로이 따져볼 시간을 가져야 한다.
“고대인들은 시간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고 믿었다. 첫 번째는 일상적이고 객관적인 행동이며, 나머지는 소위 꿈의 시간(dreamtime)이라 불리는 영속적이고 영적인 순환 주기이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 프레드 앨런 울프(Fred Alan Wolf), “꿈꾸는 우주(The Dreaming Universe 1994)” 중에서
3. 디자인을 통한 보호와 유념(Design Care)
재활용이나 재생가능 소재의 사용, 환경친화적인 제품의 생산 등의 활동은 곧 제품을 아끼고 그 본질을 이해하기 위함이다. 예를 들어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은 멀쩡한 제품도 질렸다는 이유만으로 버리곤 한다.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것은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쓰레기통으로 가져가고 어떠한 사물은 계속 지니고 싶게끔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디자인을 더 중요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교훈으로 삼아야 할 만한 사례나 쓸만한 공식은 없을까?
오늘날 대부분의 디자인은 그것이 깊은 전통에서 유래했다거나 특정 문화권의 축적된 지식을 기반으로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는 쓸모가 없거나 때로는 무책임하기까지 한 경향이 있다. 디자인이 만국 공용이라는 점을 이용해 아주 얼렁뚱땅 만들어졌다고나 할까.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물들이 만연한 이 시점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이 튀어나오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것 같다. 누가 이 디자인의 언어를 이해할 것인가? 여기에 목적이 있기는 한가? 우리에게 디자인이라는 것이 필요하기는 한가? 디자인은 우리의 자녀들에게 어떠한 유산을 남길 것인가?
성공적인 디자인 사고는 문젯거리를 해결하고 혼란스러움을 명료함으로 탈바꿈시키며, 장애물들을 극복케 한다. 보다 우수한 디자인 프로세스는 디자이너의 창조성이나 위트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도 제품에 질서와 효율성을 부여한다. 그 결과, 제품에는 소박한 특성과 세련된 면, 단아함과 대담함이 조화를 이루며, 과거와 현재를 통합하는 디자인 제품이 된다. 20세기말부터 오늘날까지 수많은 디자이너들이 지속가능함에 대한 비전을 내세우고 새로운 세대를 위한 디자인 결과물들을 생산해 내기 위해 노력해 왔다는 점을 우리는 주지하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보다 의미 있는 디자인을 위해 인류는 새로운 스토리텔러를 필요로 한다.
앞서서도 언급했듯이 이야기라는 것은 디자인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다. 고유의 서사를 지닌 채, 시대를 초월하고 미학적으로
뛰어난 우수한 제품은 쉽사리 버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줏대 있고 정체성이 뚜렷하며 특별한 이야기가 있어 우리를 ‘문화적으로’ 움직이는 디자인은 우리의 삶을 스쳐간 수많은 제품들보다 우월하다. 인간의 감각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제품들은 사용자들의 격찬을 받는다. 맥도널드 해피밀 시리즈에 따라오는 장난감들은 고유의 이야기는 결여한 채, 사용자들의 감각을 전혀 자극하지 않는, 불필요하고 금방 질리는 제품의 전형이다.
해마다 이탈리아나 스페인, 독일과 스칸디나비아의 가구 페어에서는 수 천 개의 새로운 의자들이 선보이고 있다. 이 의자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디자인을 조금씩 건드려 변형시킨 것으로, 실질적으로 필요하지도 않고 기존의 디자인과 구분하기도 어려운 제품들인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가구는 주거 환경을 향상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어떤 제품들은 디자인적으로 사용자들의 삶에 정말 기여하기보다는 그냥 기존의 디자인을 따라 한 경우가 많다. 이러한 지적은 디자이너들 개인을 공격하기 위함이 아니라 정말 우리에게 이렇게 다양한 디자인의 가구가 필요한 것인지를 자문해 보기 위함이다. 이 다양한 디자인의 가구들은 앉는 사람의 편안함보다는 분명 제조업체의 영리적 이익을 채워주기 위함이 분명하다.
물론, 이렇게 수많은 실험과 시장에서의 착오를 통해, 신선한 디자인적 발전과 진정한 혁신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디테일을 세세하게 변형시키기만 한 수많은 변종이 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지나친 다양화는 불필요한 디자인 프로세스와 잉여물을 낳을뿐더러, 사용하기 불편하고 미학적으로도 떨어지는 제품을 생산할 수 있고, 나아가서는 인간의 건강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리에게는 보다 논리적으로 제품을 생산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미술이나 연극, 영화 등의 순수예술과 같이 순수하고도 창조적인 에너지가 필요하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새로운 시각을 개발하며 즐길만한 새로운 이야기를 생산해 내려는 그런 에너지 말이다.
4. 디자인적 독창성(Design Ingenuity)
문제는 구습을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변화시키느냐'이다. 또한 디자인이 부가가치에 불과하다는 사람들의 잘못된 개념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 역시 중요한 문제이다. 명심해야 할 것은 디자인에는 복합적인 역할이 있다는 점이다. 변화를 낳고 이로써 이슈를 만들어 내는 사회적 역할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보자. 덴마크의 제조업체인 마테(Mater) 사는 디자인의 이러한 측면을 오래전에 간파하고, 디자인적 사고와 사회적 책임을 연결시키고자 노력해 왔다. 미국의 디자이너인 토드 바커(Todd Bacher)는 마테 사와의 협업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마테 사와 함께 일하는 것은 디자이너로서 굉장한 기회였어요. 지역의 공예가들과 함께 아이디어를 교환할 수 있는 기회였거든요. 세계화라는 미명 하에, 지역 전통의 공예라든가 특수한 기술이 점차 사라지고 있지요. 이러한 것들을 보존해야겠다는 자각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통 공예는 문화적 다양성의 표상이라는 점에서 뿐 아니라, 혁신적인 컨셉을 지닌 디자인 제품의 원천이라는 점에서 풍부한 경험과 지식을 뜻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건축가 윌리엄 맥도너(William McDonough)와 마이클 브라운가르트(Michael Braungart) 교수의 제품 이론인 ‘요람에서 요람까지(Cradle to Cradle)’는 또 다른 흥미로운 해결책을 제시한다. 이 이론은 개발과 생산과정이 자연환경에 영향을 거의 미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물론, 사용 후에도 생태계로 쉽게 환원될 수 있는 제품을 디자인하라고 설파한다. 세계적인 항공기 제조회사인 에어버스(Airbus)는 이에 따라 기내 좌석을 재정비하였다. 좌석의 소재는 전부 분해가 가능한 것으로 설치 비용 또한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또, 인간은 연구 끝에 전분 셀룰로오스나 젖산을 이용하여 생태계로의 환원이 가능한 ‘바이오 플라스틱’을 개발하였다. 바이오 플라스틱을 활용한 제품들은 폐기된 후에도 각종 미네랄과 이산화탄소, 수분 등으로 분해된다. 배출되는 탄소의 양이 전혀 없는 탄소 중립(carbon neutral) 제품으로 각광을 받으면서, 의료, 제품 포장, 조경, 소비재, 요식업 등의 분야에서 널리 애용되고 있다.
유사한 사례를 더 들자면, 압축 유리로 만든 톰 딕슨(Tom Dixon)의 도자기 잔이나 유니레버(Unilever)에서 선보인 ‘고드름 포장재’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다. 고드름 포장재는 실온에서 녹아버리는 포장지로 환경 친화적인 아이템이다. 안드레아 루기에로(Andrea Ruggiero)가 디자인한 일회용 접시나 일회용 소변기인 피푸(Peepoo)는 노숙자들의 거주와 위생에 도움이 되는 아이템이라 하겠다. 에쿠아도르의 서핑보드 제조업체인 쿤티치(Kuntiqi)는 폴리스티렌이나 폴리우레탄과 같은 화학 소재를 이용하지 않고, 빨리 자라서 98%에 달하는 몸체를 배어 내도 끄떡없어 환경친화적인 발사 나무를 사용하고 있다.
데이비드 리포트(David Report)
데이비드 리포트는 다비드 카를손(David Carlson)이 운영하는 스웨덴의 디자인 매체로 디자인계 전반의 소식을 웹을 통해 전하고 있으며 매년 트렌드 보고서를 발간 중이다. 2010년 3월 말 발간된 트렌드 보고서, '다시 디자인을 생각하며(Time to rethink Design)'는 두 번에 걸쳐 designdb.com에 소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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