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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언 세트(전3권)] 드라큘라를 둘러싼 비밀과 전설을 파헤친다.

kimdirector 2018. 11. 20. 17:08 

 

 

 

 

 

 

 

 

히스토리언 세트(전3권)

 
저 엘리자베스 코스토바 /  역 조영학 / 김영사 / 2005.07.28
영미소설, 스릴러, 공포
 
 
 
 

 
 
 
 

어느 늦은 밤, 아버지의 서재를 뒤지던 한 소녀는 낡은 책 한 권과 노랗게 바랜 편지 뭉치를 찾아낸다. 편지에는 인류 역사상 가장 널리 알려진 흡혈귀 드라큘라를 찾아나선 역사가들의 투쟁기가 기록되어 있었다. 또 15세기 왈라키아를 통치했던 실재 인물 블라드 드라큘라를 둘러싼 비밀과 전설을 파헤치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편지를 읽은 소녀는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듯 목숨을 걸고 드라큘라의 실체를 추적해간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아버지의 과거와 드라큘라의 후손인 어머니의 기구한 운명을 접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걸고서라도 드라큘라의 실체를 밝혀내려 한 역사가들의 사명의식도 알게 된다. 그러면서 그녀는 영원히 죽지 않는 존재인 드라큘라의 진실에 서서히 접근해가기 시작한다.시공간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드라큘라와 역사가들의 대결!

 

 

500여년 동안 숨겨져왔던 드라큘라의 비밀이 비로소 밝혀진다!

드라큘라와 그의 존재를 추적해가는 역사가들의 숨막히는 두뇌 게임!

 

이 소설은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듯 ‘역사가’와 ‘역사’가 주인공이다. 15세기 오스만 투르크의 제국 확장 전쟁에서부터 20세기까지, 근 5세기에 걸친 역사가 담겨 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역사가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전공 분야에 일종의 사명감을 지니고 있는 인물들이다. 그들은 과거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큰 보람을 느끼고, 자신의 연구분야에서 인정을 받고 있는 한 시대의 지식인들이다. 그런 그들 앞에 어느 날 한 권의 책이 나타난다. 그 책은 낡고 부드러운 가죽으로 제본되어 있고, 그 안의 종이들은 무척이나 오래되어 보였다. 다른 페이지에는 아무것도 인쇄되어 있지 않았는데, 유독 중간 페이지 부분에만 날개를 활짝 펼친 용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짐승의 발톱에는 ‘드라쿨리아(Drakulya)'라는 단어가 적힌 깃발이 걸려 있었다. 그 책이 갑자기 자신들의 앞에 놓인 까닭을 궁금해하며, 그들은 조금씩 그 비밀을 파헤쳐가기 시작한다. 드라큘라의 어원은 ‘용’(서양에서는 용이 불길한 징조의 상징이다) 또는 ‘악마’이고, 왈라키아(현 루마니아에 위치)의 폭군이자 카르파티아 산맥의 영주인 말뚝왕 블라드 체페슈를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기도 했다.

 

책에는 세대를 달리하는 세 명의 서술자가 등장한다. 주 인물은 열여섯 살짜리 소녀. 소녀는 어느 늦은 밤, 아버지의 서재를 뒤지다가 낡은 책 한 권과 노랗게 바랜 편지 뭉치를 찾아낸다. 편지에는 드라큘라를 찾아나선 역사가들의 투쟁기가 기록되어 있었다. 또 15세기 왈라키아를 통치했던 실존 인물 블라드 드라큘라를 둘러싼 비밀과 전설을 파헤치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편지를 읽은 소녀는 이 책과 드라큘라의 실체가 궁금해 아버지에게 그 이야기를 해달라고 청한다. 그리고 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 본격적으로 소설이 전개되기 시작한다.

 

우선 아버지의 지도교수인 로시가 등장한다. 로시는 갑자기 자신 앞에 나타난 낡은 책에 궁금증을 느끼고 드라큘라를 찾아 동유럽의 역사 속으로 빠져든다. 그리고 자신의 후임자가 될지도 모를 누군가에게 편지 형식으로 기록을 남겨놓는다. 

 

소녀의 아버지인 폴에게도 어느 날 그 낡은 책이 배달된다. 폴은 그 책을 지도교수인 로시에게 보여주고, 그를 통해 드라큘라의 실체를 접하게 된다. 그런데 갑자기 로시 교수가 어디론가로 사라지고, 폴은 로시의 행적을 찾기 위해 드라큘라의 무덤이 있는 동유럽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여러 사람에게도 용이 그려진 낡은 책이 전달된 사실을 알게 되고, 조금씩 드라큘라의 실체에 접근해가기 시작한다. 곧 폴은 드라큘라가 수세기에 걸쳐 죽지 않고 살아 있으며, 역사를 조작해서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과정에서 동유럽의 역사와 민요, 설화 등이 등장하고, 그것이 이 소설의 최대 장점으로 부각된다.

 

 

전세계에 가장 널리 알려진 전설적인 악마

블라드 드라큘라는 누구인가?

 

잘 알려졌다시피 드라큘라는 역사상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이다. 1431년에 태어난 그는 1442년부터 6년간 오스만 투르크의 인질로 잡혀가게 된다. 아버지 블라드 2세가 오스만 투르크의 침략이 두려워 그를 인질로 보냈기 때문이었다. 드라큘라는 그곳에서 섬뜩한 고문기술을 익혔고, 풀려나자마자 이내 왈라키아 공국의 영주로 등극한다. 1451년에는 세계 제국을 건설했던 메메드 2세가 오스만 투르크의 술탄으로 즉위한다. 그때부터 드라큘라는 오스만 투르크로부터 왈라키아를 지켜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인다. 1462년에는 오스만 군을 습격해 수천 명을 포로로 잡아 그들을 ‘말뚝형’에 처한다(제1권 부록 그림 참고). 그는 희생자들이 말뚝에 서서히 박히며 죽어가는 모습을 즐거워하며 지켜보았다고 한다. 이외에도 그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다양한 고문기술을 이용해 국내외 사람들을 처형했다고 알려졌다.

 

사실 드라큘라는 오스만 투르크의 침입에 맞서 용감히 싸운 민족 영웅이었다. 그러나 그의 잔인한 성품이 널리 알려져 왈라키아의 주민은 물론 오스만 투르크의 군사들까지도 그의 존재를 두려워했다고 한다. 내외부의 적이 많았던 그는 1476년 석연치 않은 이유로 사망했고, 얼마 뒤 스나고프 호수 근방에 묻혔다. 여기까지가 실제로 기록되어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리고 소설에는 이런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엘리자베스 코스토바가 재창조한 드라큘라의 모습이 색다른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소설 속 드라큘라는 잔인하지만, 굉장히 지적이다. 수많은 고서의 수집가이기도 하고, 이를 애독하는 학자적 기질도 가지고 있다. 수많은 역사가 등에게 낡은 책을 전달해준 인물이 바로 드라큘라였던 것. 그는 이를 통해 역사가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렸고, 수없이 많은 역사적 순간에 자신의 존재가 기록되게 만들었다. 혁명기의 파리, 1620년대의 로마, 유럽 전역에 전염병이 퍼졌던 시기 등에 등장하면서 그는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켰다.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주고, 광기와 욕망을 퍼뜨리며 자신을 숭배하게 만든 것이다.

 

 

역사의 비밀을 파헤치는 ‘팩션’의 걸작

 

그동안 드라큘라의 모습은 수많은 소설과 영화, 연극 등으로 무수히 재현되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코스토바가 창조한 드라큘라의 모습은 그동안 그려졌던 드라큘라 캐릭터와는 아주 다르다. 사람들의 피를 빠는 잔인한 흡혈귀로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그런 모습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역사 속에서 탄생한 개연성 있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그가 살아 있는 동안 무엇을 지키려 애썼는지, 또 오스만 투르크와 맞서면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왜 역사가들이 그를 제거하려는지 등이 아주 재미있게 그려져 있다. 

 

이와 같은 모습은 요즘 급속히 유행하고 있는 ‘팩션’의 전형적인 형태이다. 역사적 사실과 작가의 상상력이 버무려진 팩션은 전혀 다른 두 분야인 것처럼 보이는 허구와 실재, 또는 소설과 사실 사이의 경계를 과감히 폐지하고 그 두 분야의 혼합을 시도한다. 그런 의미에서, 팩션은 모든 것의 경계가 소멸하고 있는 이 시대의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는 소설 장르라고 할 수 있다. 『히스토리언』을 읽는 한 가지 방법도 바로 그런 문학적 주제를 염두에 두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비로소 팩션이 제공해주는, ‘사물의 이면에 숨어 있는 본질을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될 것이다(제1권 부록 ‘팩션은 어떻게 대중을 사로잡았는가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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