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로저는 그루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에서 그루지아 정부를 위해 일하고 있었다. 드디어 일을 끝내고 그루지아를 떠나게 된 마지막 날 쇼핑을 나갔다. 어떤 조각가가 상가에서 조그만 접시에 뭔가를 열심히 새기고 있었다. 저는 전시된 제품보다는 조각가가 작업하고 있는 접시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접시의 가격을 물어보았습니다.
"이건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언제쯤 완성됩니까?" 약간 초조해진 제가 물었습니다.
"며칠이면 됩니다. 그때 사러 오세요."
"미완성이라도 좋으니 지금 사고 싶습니다. 얼마를 드리면 될까요?"
그러나 조각가는 "지금은 팔지 않습니다" 이렇게 대답할 뿐이었습니다.
그의 무뚝뚝한 대답에 저는 화가 났습니다... 제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꾹 참았어요. 그러자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어쩌면 조각가도 나에게 인정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하는. 그도 저처럼 감정이 상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때 조각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접시를 지금 팔면 더 비싸게 받아야 합니다."
"왜요?" 저는 놀라서 이유를 물었죠.
그러자 조각가는 저를 쳐다보며 빙긋 웃더니
"제가 지금 이 접시를 팔면 이걸 완성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죠"라고 대답했어요.
그래서 저는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그 접시가 무척 마음에 듭니다. 물론 당신이 만든 다른 작품들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전 오늘 트빌리시를 떠나야 합니다. 제가 만약 이 접시를 갖게 된다면 그걸 볼 때마다 자신의 일에 긍지와 만족감을 느끼는 당신의 모습을 떠올리게 될 것 같군요."
로저 피셔 등의 '감성으로 설득하라' 중에서 (두드림, 41p)
우리는 살아가며 이런 저런 '협상'을 많이 합니다. 비즈니스 협상은 물론이고, 식당에서 친구들과 메뉴를 정할 때도, 물건을 살 때도, 아이에게 무엇을 시킬 때도 협상을 합니다. '설득'이라고 바꿔 불러도 좋겠지요.
협상이나 설득을 할 때, 우리는 가능하면 '이성적'으로 임하려 합니다. '감정'이 일을 망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감정이 협상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감정에 사로잡히지 말고 감정을 일으키는 원인인 '핵심 관심'에 집중하라..." Address the concern, not the emotion...
저자는 '핵심 관심'(core concern)으로 인정, 협력, 자율, 지위, 역할을 꼽습니다. '인정'이 무시되면 나의 생각이나 행동이 평가절하되지만, 충족되면 가치를 인정받는다고 느낍니다. '협력'이 무시되면 적으로 간주되어 소외당하지만, 충족되면 동료로 대접받습니다. '자율'이 무시되면 의사결정의 자유를 침해받는다고 느끼지만, 충족되면 내가 중요한 문제의 의사결정권을 갖고 있다고 느끼게 됩니다.
'지위'가 무시되면 다른 사람에 비해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지만, 충족되면 제대로 대접받고 있다고 느낍니다. '역할'이 무시되면 나의 역할과 활동에 만족하지 못하지만, 충족되면 나의 역할과 행동에 만족하게 됩니다.
저자인 로저는 그루지아에서 마음에 드는 조각가의 미완성 접시를 원하는 가격에 살 수 있었습니다. 그 조각가를 인정해주었고, 그가 인정받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상대방이 나를 이해하고, 내 가치를 존중해주며, 내 말을 들어주기를 바란다. 사람들은 상대방이 자신을 진심으로 인정한다고 느낄 때, 상대방에게 적대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좀더 우호적으로 협력하기 위해 노력한다."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인정'. 인정은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중요한 자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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