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벳 글꼴과 국가의 관계
특정한 서체에 의해 유발되는 감정과 관념은 역사적이며 사회적인 것이다. 그 느낌은 수용자가 가지고 있는 경험과 문화적 상황의 일부분이기도 하다.
페니키아의 문자로부터 그리스와 로마를 통해 발전해온 서구의 알파벳의 경우, 2000년 전에 돌에 새겨졌던 글자와 그 이후 펜으로 쓰는 형태로부터 각 나라들이 자신들의 글자꼴을 발전시키면서 특정한 나라와 그 나라의 이미지를 연상케 하는 글자 사이의 관계가 맺어지기도 했다. 예를 들어, 조금만 글씨체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알 수 있는 것으로 아이리쉬(Irish) 서체가 있다. 이것은 아일랜드에서 9세기 초에 필사본으로 완성된 라틴어 복음서 "켈스의 서(book od Kells)"에 있던 독특한 형태의 글자에서 비롯된 것인데, 이후 수없이 많이 사용되면서 그 모양이 곧 아이리시 민족을 상징할 만큼 이미지가 굳어진 경우이다. 특별한 내력이 있던, 혹은 없던 글자를 반복해서 사용함으로서 그러한 고정관념이 강화되는 것이다.
초기 로만체로 알려진 가라몬드(Garamond)체는 프랑스, 케슬론(Caslon)은 영국, 보도니(Bodoni)는 이탈리아를 암시할 만큼 그 나라와의 연관이 깊다. 만일 이들 서체를 다른 나라 언어를 표기하거나 다른 나라와 관련된 이야기를 적는데 사용한다면 어색한 느낌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유럽의 알파벳 서체 중 우리가 흔히 말하는 블랙레터(Black Letter)는 독일이라는 나라와 관련이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유럽의 역사적 사건 속에서 굳어진 인상이기도 한데 사실, 블랙 레터는 로만체와 함께 19세기까지 수 백년 동안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주로 사용되던 글씨체이다. 독일에서는 프락츄어(Fraktur)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것은 만들어진 시기와 각각의 특징에 따라 다시 텍스츄라(Textura), 로툰다(rotunda), 슈바바커(Schwabacher), 프락츄어(Fraktur) 등으로 세분된다.
이 서체가 독일과 강력한 연관을 맺게 된 첫 번째는 구텐베르크의 인쇄이다. 구텐베르크가 만든 금속 활자의 글꼴은 1500년 이전에 독일에서 사용되던 텍스츄라체였다. 이후, 많은 북유럽 나라에서는 이 서체가 널리 사용되었다.
블랙 레터가 독일과 맺는 두 번째 인연은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1522년에 슈바바커체로 성경을 인쇄하면서 였다. 이 성경은 로마 교황권의 착취로부터 사람들이 자유로워야 한다고 믿었던 루터의 생각과 함께 프로테스탄티즘을 등장시켰고, 동시에 라틴어에 사용되는 카톨릭 서체로서 인식되었던 텍스츄라와 로툰다로부터 슈바바커체도 분리해버렸다. 루터의 독일어 성경은 독일 말을 하는 작은 주(州)들이 독일 국가로 서서히 뭉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독일이 단합하는 모습은 히틀러가 권력을 잡은 1933년에 재현되었다. 이때 프락츄어체가 "독일의 서체"로서 정치화되고, 여기에 프랑스에서 지배적으로 사용되었던 고전 로만체와 같은 "외국 서체"에 대항하는 국가주의가 주입되었다.
얀 치홀트는 블랙 레터를 강조하는 것은 민족주의적이라고 비난했지만 루돌프 코흐(Rudolf Koch)같은 사람은 독일식 쓰기를 통해 독일식 삶의 특성이 드러난다며 이를 예찬했다. 이때의 대립은 로만체와 푸락츄어 보다는 그로테스크(산세리프체)와 프락츄어의 대립으로 진행되면서 급진주의 대 낭만주의, 국제주의 대 민족주의, 차가운 산세리프 대 휴먼 푸락츄어 식으로 대별되었다.
영국 미술과 공예 운동에서 크게 영향을 받은 신독일미술과 바우하우스의 국제주의적 이상에도 불구하고 국가 사회당(The National Socialist=나치)이 권력을 잡으면서 프락츄어는 "독일의 글자"로 선언되었다. 모든 공식적인 인쇄물, 교과서, 신문들이 프락츄어로 다시 만들어졌고 대부분의 타이포그래퍼들과 디자이너들은 그로테스크와 뉴 타이포그래피의 경향을 버려야 했다. 글의 정렬도 중앙 맞추기 대신 왼쪽 맞추기로 바뀌고, 강조를 위해 원과 직선의 띠 등이 사용되었다.
히틀러의 군대가 모든 전선에서 승리를 하면서 "미래 세계의 힘은 '세계 글자'(로만체)에 적용시켜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치가들에 의해 1941년 프락츄어가 폐지되었지만, 프락츄어는 이미 나치의 글자로 세계에 인식되어 버렸다.
20세기 초까지도 공식적인 글자를 프락츄어에서 로만체로 바꾸지 않았던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체코슬로바키아, 덴마크, 폴란드 등, 말하자면 거의 모든 독일의 이웃 국가들에서 프락츄어는 점령군의 글자로 인식되었다. 무엇보다도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내졌던 유태인들에게 그것은 무서운 압제자의 글자였다. 순수한 형태로서 여겨지는 블랙레터에 대한 이러한 결속된 부정적 의식은 지금까지도 유럽과 미국인들에게서 바뀌지 않고 있다. 물론 블랙레터 서체는 지금도 전통적인 글자로 살아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신문 제호에 가장 많이 쓰이고 있고, 맥주의 로고와 광고에도 흔히 사용된다. 하지만 전통적이고 아름다운 글꼴로서의 블랙 레터 이미지는 나치에 의해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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