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대화할 때 가장 관심을 끄는 화제는 역시 ‘스마트폰’일 것이다. 각자 사용하는 어플리케이션 관련 정보를 공유하기도 하고, 먼저 구입한 ‘선배’가 나중에 구입한 ‘후배’에게 스마트폰의 다양한 기능을 가르쳐주기도 하며, 안드로이드폰이냐 아니면 아이폰이냐를 놓고 소규모 토론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런 대화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하는 사실은 언론의 기사나 제조사의 광고가 아무리 풍부하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다 해도 결국 스마트폰에 대한 최종 평가는 사용자가 한다는 점이다. 필자가 아는 사람 가운데는 스마트폰으로 문자 보내는 것에 도저히 익숙해질 수 없어서 결국 구형 핸드폰(feature phone)을 다시 구입한 경우도 있다. 적어도 그 사용자는 주위 사람들에게 스마트폰의 구입을 적극 권유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스마트폰의 예를 들었지만, 이런 문제는 사실 기업의 업무시스템 환경에서 더욱 심각하다. 그나마 스마트폰은 소비자 시장의 경쟁을 거쳐 광범위한 일반 사용자의 손에 들어간다는 전제 아래 최적의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적용했기 때문에, 비교적 사용자 친화적인 환경을 갖추고 있는 편이다.
하지만 기업이나 기관 등 다양한 조직에서 수많은 사용자가 업무 시간 대부분을 할애해 사용하는 업무시스템의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도, 체계적인 분석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다. 기업의 업무시스템 역시 제대로 구현되었는가의 평가는 그 시스템을 사용하는 ‘사용자’가 하게 된다.
스마트폰 사용자는 기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사용하던 제품을 버리고 좀더 마음에 드는 제품을 선택할 수 있지만, 업무시스템은 상대적으로 그런 유연성이 낮다. 매일매일 접하고 사용하는 업무시스템이 사용하기 어렵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핸드폰 갈아치우듯 어느 날 갑자기 환경을 갈아치울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요인 때문에 업무시스템의 사용자 경험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스마트폰의 경우보다 훨씬 큰 피해를 끼치게 된다. 스마트폰에 비해 쉽게 바꾸기도 어렵고, 스마트폰에 비해 훨씬 더 심각하고 방대한 업무를 다루기 때문이다.
최근 각 기업의 IT 환경에서 새삼스럽게 ‘사용자 경험(UX, User eXperience)’을 따지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단순한 기능이나 절차상의 만족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지각 가능한 모든 측면에서 사용자가 참여·사용·관찰하고 사용자들끼리 상호 교감을 통해 가치 있는 경험을 얻는 것이 기업 생산성에 얼마나 중요한지 기업들이 깨닫고 있는 것이다.
UX가 최근 스마트폰과 함께 뜨거운 화두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탈사이트, 심지어 주변에서 오랫동안 사용해온 대부분의 가전제품들도 실은 오래 전부터 UX를 중요하게 고려해왔다. 그렇다면, 기업에서 많은 임직원들이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사용하는 업무용 정보시스템에는 UX가 어떻게 적용되고 있을까?
업무 시스템의 설계구현에 UX 중심 사상이 필요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사용자가 하루 중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사용하는 시스템이다.
업무시스템 사용자들은 출근 이후 시스템 로그인과 퇴근을 앞둔 로그아웃까지 하루 8시간 이상을 시스템과 함께한다. 이렇게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몇 년 또는 몇 십 년 동안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시스템의 사용이 복잡하고 불편하다면, 사용자들은 불필요한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할 수밖에 없고, 그만큼 피로도도 높아지게 된다.
UI 전문업체 닐슨앤노만그룹(Nielson & Norman Group)의 보고서 ‘Ten Best Intranet 2006’에 따르면 회사 인트라넷 시스템의 사용성(Usability, 도구나 물건, 서비스를 어떤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용할 때 어느 정도 사용하기 쉬운지 평가하는 기준)을 개선하여 효율적인 업무 환경을 제공하여 얻어지는 이익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매년 종업원 1인당 약 100달러(US)에 이른다고 한다. 1천 명의 직원이 있는 회사의 업무시스템이 사용자 중심적으로 구성될 경우 연간 10만 달러의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둘째, 비즈니스 종류별 특성이 명확하다.
우리의 삶과 사회에서 나타나는 모든 현상은 결국 거대한 트렌드의 한 부분이다. 어떤 일을 하던지 선진사례 분석(Benchmarking)이 필요한 것도 이것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선진사례라고 해도 내가 하려는 업무, 목표 과제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비즈니스나 회사마다 고유한 특성이 있고, 그런 특성을 무시하면 어떤 선진사례도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어렵다.
금융회사들의 업무시스템을 UX 관점으로 분석 및 설계해봐도 업종별, 비즈니스별 특성이 뚜렷하게 구별된다. 은행은 대면 채널의 사용자가 실시간으로 고객의 돈을 이동하는 업무를 주로 수행하기 때문에 업무의 속도보다는 정확도가 우선시된다. 증권의 경우 촌각을 다투는 매매 수행이 가장 중요하므로 속도의 보장이 최우선 과제이다. 보험은 입력해야 하는 정보와 처리 건수가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어서 하나의 화면에서 되도록 많은 정보를 확인하고 처리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런 문제들도 UX의 관점을 동원하여 해결해야 하는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셋째, 조직이나 직무에 따라 사용자의 요구사항이 다르다.
동일한 비즈니스를 수행하는 회사라 해도, 조직의 특성에 따라 수행하는 직무나 고객의 요구사항은 다양하다. 가령, A금융사의 경우, B직무 수행 직원의 평균 연령이 45세였다. 그것은 동종 업계 동일 직무의 평균을 4-5세 가량 웃도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 평균연령은 매년 1세씩 높아지고 있었다. 이것은 A금융사의 B직무 수행 직원들의 인력 이동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동종업계 다른 업체의 B직무에 젊은 세대의 참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것과 완전히 대조되는 현상이었다.
특정 업무시스템 사용자의 평균 연령이 몇 세인가? 고객 대면 채널과 비대면 채널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주로 사무실에서 데스크탑을 사용하는가 아니면 외근하는 시간이 많아 모바일 디바이스를 주로 사용하는가? 이직률은 얼마나 되는가? 이러한 질문들이 다양한 사용자의 요구사항을 도출하기 위해 검토해야 할 요소들이다. 이러한 작업들도 UX적 관점에서 수행하는 일들이다.
넷째, 비즈니스 프로세스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업무시스템은 기능 중심, IT관리 중심의 시스템이었다. 현실 세계의 비즈니스를 IT라는 가상세계에 담는 1차원적인 단계였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업무시스템은 업무를 수행하는 보조 수단 정도로 인식되는 일이 많았고, 유지보수 역시 별도의 원칙이나 규정 없이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이루어지는 식이었다. 하지만 이제 ‘비즈니스 중심 업무시스템’을 설계 및 구현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비즈니스 중심 업무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시스템의 아키텍처 및 인프라는 물론이고, 업무시스템의 UI(화면)도 매우 중요하다. 특히 UI는 다른 요소보다 더 적은 노력으로 더 많은 효과를 내는 요소라고 평가된다.
증권 업무의 경우 최초 거래하는 고객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거래가 고객이 이미 가지고 있던 주식을 매도한 후 다른 종목을 매수하는 경우이다. 그렇다면, 고객이 주식을 매도한 후 새로운 주식을 매수하는 업무 화면으로 접근 통로를 제공해줄 필요가 있다. 이렇게 된다면, 사용자가 매수 화면을 찾아 메뉴 영역을 헤매는 시간과 노력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UX 관점의 업무시스템 설계이다.
대부분의 금융회사가 갖고 있는 ‘심사(Underwriting)’ 업무도 마찬가지다. 심사 업무는 특정 고객에게 금융회사가 일정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판단하는 것이다. 따라서 심사 대상 고객을 다양한 정보와 문서를 통해 조명할 필요가 있다. 심사 업무의 이러한 프로세스와 특성을 이해한다면, 다양한 정보를 한번에 쉽게 볼 수 있는 UI를 구성해 제공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심사 업무 담당자가 시스템 전반에 흩어져있는 정보를 찾아 돌아다니는 것을 방지하여 업무 효율을 높이고, 비즈니스 자원의 낭비를 막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UX 중심 사상에 대한 심각한 오해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UX가 단지 눈에 보이는 화면 구성만을 다룬다고 이해하는 것이다. UX는 말 그대로 사용자 경험 전반을 다루는 것이지, 단지 화면만을 구성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는 “디자인(설계)은 그것이 어떻게 보이는지, 어떻게 느껴지는지를 다루는 작업이 아니다. 그것이 어떻게 동작하는지를 다루는 작업이다”고 말했다. 사용자 중심 업무시스템은 ‘사용자’가 그 시스템을 어떻게 사용하게 만들지 고민하여 설계한 결과물이다.
그 과정에는 비즈니스와 그것을 수행하는 사람에 대한 다각도의 분석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분석-설계-구현된 업무시스템이어야 비로소 사용 편의성과 업무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 ‘사용자가 만족하는 업무시스템’이라는 기준은 앞으로 기업 IT시스템의 경제성, 정서, 인력 측면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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