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
‘영웅’의 그늘을 걷어낸 인간 안중근의 가장 치열했던 일주일
저 김훈 / 문학동네 / 2022.08.03 / 한국소설
독서기간 : 2022.12.20 ~ 12.22 / 7시간 39분
요즘 안중근에 대한 미디어의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그럴 것이 최근 ‘영웅’이라는 뮤지컬영화가 상영되면서 관심을 받고 있을 즈음, 이 소설을 알게 되었고, 안 읽어 볼 수 없었다. 물론 우리에게는 안중근이라는 이름 석자는 너무나 익숙한 이름이기도 하고 우리들 마음속에는 늘 안중근이라는 인물에 대한 기억이 자리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안중근에 대한 정보를 많은 미디어를 통해서 그리고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해서 익히 잘 알고 있었지만, 책을 통해서는 처음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김훈 작가가 집필한 소설이라 더욱 궁금하기도 했다. 김훈 작가의 소설은 두 번째 소설로 ‘칼의 노래’라는 소설로 이순신에 대한 인간적인 모습을 기억하고 있고, 처음 접했었는데, 그때 느꼈던 감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던 나에게 김훈 작가가 보는 안중근의 모습이 어떤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칼의 노래’에서 느꼈던 느낌을 고스란히 ‘하얼빈’에서도 느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김훈 작가 특유의 간결함, 군더더기 없는 스토리 전개, 그리고 변곡점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의 절제력있는 필체의 특징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소설이라 생각된다. 또한, ‘하얼빈’은 안중근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역사적인 기록보다는 안중근이라는 인물에 집중하되 역사적 진실 속에서 김훈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져 재구성된 만큼 작가적 글쓰기 방식이 주는 특유의 독특함이 있다고 볼 수 있는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부분은 ‘칼의 노래’에서도 볼 수 있는 작가적 상상력과 이순신의 업적에 가려진 또 다른 인간적인 내면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방식이 ‘하얼빈’을 통해서 안중근이라는 인물에 맞춰진 방식으로 전개된다고 보면 좋을 듯하다.
극의 초반과 중반에는 당시 조선의 왕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대목이 등장하는데, 특히 고종, 순종의 모습을 살펴 볼 수 있는 부분들 대부분은 왕실의 무지함을 엿볼 수 있는 모습들이 개인적으로 화가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느꼈다. 저렇게 밖에 못하나,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사건을 접한 왕실의 모습과 대신들의 대응은 참으로 유감스럽고, 안타까울 정도였다. 하지만 조선의 무지한 민심의 분위기는 왕실과 대신들과는 다름을 작가는 조용하고 차분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 소설은 크게 보면 이토 히로부미가 저격되기 전과 후로 나뉜다고 볼 수 있다. 이토 히로부미가 죽기 전의 스토리 전개는 대한제국의 상황을, 그리고 안중근의 근황을 소개하는 정도로 볼 수 있지만, 히토 히로부미의 저격 이후에는 철저히 안중근이라는 인물에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소토리 전개라고 볼 수 있다. 특히, 김훈 작가의 독특한 스토리 전개 부분을 얘기하자면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순간을 다루는 부분인데, 저격하는 순간이 주는 극적 장면을 연출한다거나 상황이 주는 긴박함, 또는 다이나믹함, 안중근의 당시 상황이 주는 심리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지 않다. 어쩌면 조금은 아쉬움이나 심심함이 느껴지기도 하고 무미건조함 마저 느껴지기도 하지만, 김훈 작가의 글쓰기 특징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칼의 노래’를 읽어봤던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는 이해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은 오로지 개인적인 감정일 것이다. 이런 장면이 또 있다. 안중근 의사가 마지막으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장면인데, 이 부분에서도 안중근의 심리적인 갈등이라든가 내면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는 부분일 텐데도 무덤덤하게 그냥 넘어간다. 이 부분도 조금은 작가적 상상력이 더해져서 진행했다면 어떠했을까 상상하게 되는 묘한 기분을 느끼게 되었다.
영웅은 난세에 나온다고 했다. 하지만 ‘하얼빈’에서는 영웅주의에 매몰되어 안중근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철저히 안중근의 인물에 대한 청년기의 순수한 열정, 대한제국의 독립을 위해 히토 히로부미를 저격할 수밖에 없었던 절박한 내면과의 복잡한 갈등, 천주교 신자로써의 신앙심과 충돌되는 극단적 살인이라는 윤리와도 상충되는 대의명분과의 갈등을 김훈 작가 특유의 간결함과 절제력에서 빛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영웅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매력보다는 영웅이라는 수식어 뒤에 가려진 안중근의 인간적 매력을 볼 수 있다는 것과 가장 혼란했던 정치적 상황이 주는 암울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우리의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한 인물을 중심으로 현시대에 되살려 놓은 듯한 느낌이 든다.
이 책의 말미에 안중근의 사형 집행 이후의 살아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도 짧게 전하고 있다. 안중근의 가족과 친척들의 뒷 이야기, 그리고 함께 했던 우덕순의 뒷 날의 이야기, 특히 관심이 가졌던 부분인 안중근의 가족과 친척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대부분 남겨진 이들이 겪어야 했던 배신과 갖은 수모와 싸워야 했던 이들의 이야기는 나에게는 조금은 낮설움과 충격적인 사실들에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안중근 사후에 담긴 후일담이기는 하겠지만,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도 많이 담겨 있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소설의 끝은 장황하거나 많은 울림이 있지는 않다. 마지막도 김훈 작가 특유의 간결함으로 군더더기없이 마무리된다.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의 저격사건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안중근의 마지막 모습 또한 간결하게 마무리되고 있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대변하 듯 전체적인 소설의 분위기는 어둡다는 표현보다는 차분하다는 표현이 맞을 듯싶다. 차분하지만 무겁게 내려앉은 스토리 전개와 극적 반전 없이 이어지는 흐름,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 주는 암울함이 주는 ‘하얼빈’은 꼭 읽어 봤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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