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양
斜陽(1947)
저 다자이 오사무 / 역 오유리 / 문예출판사 / 2022.12.22 / 일본소설
독서기간 : 2023.01.30 ~ 02.02 (4시간 6분)
‘인간실격’을 읽은 이후로 오랜만에 다자이 오사무의 책을 꺼내 들었다. ‘인간실격’을 읽었을 때의 느낌이 아직 남아있는 지금, 다시 비슷한 느낌을 가지고 읽게 되지 않을까 생각되었지만, ‘사양’은 그런 느낌과는 조금은 다른 결이 느껴졌다. ‘인간실격’에서는 작가인 ‘다자이 오사무’의 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통해서 작가의 심경을, 경험을 토대로 스토리가 전개되지만, ‘사양’에서는 작가 개인적인 이야기보다는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일본의 당시 사회상을 반영한 귀족들의 몰락과 함께 작가 특유의 자기 파멸적 스토리 전개가 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고, 그 스토리 속에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녹여서 패전 이후의 정신적, 육체적 공항에 빠진 일본의 젊은이들을 대변하는 소설이라고 간략하게 소개할 수 있을 듯하다.
‘사양’은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직후인 1947년에 출간되었고, 출간 즉시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소설이고, 몰락한 귀족들을 일컬어 ‘사양족’ 이라는 유행어가 있을 정도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소설이기도 하다. ‘인간실격’보다 일찍 출간한 탓에 스토리 자체로만 본다면 파격적인 내용이 있기는 하지만, ‘인간실격보다는 조금은 얌전한 정도이고 당시의 일본 분위기에서는 파격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는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사양’은 작가인 다자이 오사무 특유의 무색무취한 어둡고 자기 파멸적인 세계관이 정립되기 전의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을 듯싶다.
이 소설의 스토리를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귀족 집안인 가즈코의 집안이 몰락하여 도쿄를 떠나 시 외곽의 어느 산장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시작되고, 집안의 경제적인 여건이 되지 않아 집안의 물건과 옷들을 내다 팔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와중에 남동생인 나오지가 전쟁터에서 돌아오지만 소설가인 우에하라와 어울리며 술과 마약 속에서 방탄한 생활을 하게 되고, 어머니는 병세가 악화되어 세상을 떠나게 된다. 주인공인 가츠코는 우에하라에게 편지를 보내며 구애를 하게 되고, 남동생인 나오지 또한, 자살을 택하게 된다. 그리고 가츠코는 우에하라의 아기를 가지게 된다.
‘사양’의 특징적인 부분을 얘기하자면 주인공인 가츠코의 독백이 많이 등장한다. 귀족 집안의 몰락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 자신의 가련한 삶에 대한 의지와 어머니의 병세 악화로 인한 괴로운 심정, 우에하라와의 관계에서 자신이 지녀야 할 운명에 맞닫드리며 슬픔과 괴로운 마음을 홀로 이겨내는 장면이 상당히 많이 등장하는 편이다. 그리고, 가즈코는 남동생인 나오지와 친한 소설가 우에하라에게 사랑을 느끼며 몇 차례 편지를 보내는 장면과 남동생이 자살을 선택하며 누나인 가츠코에게 유서를 남기는 부분은 그냥 편지를 썼다가 아닌 우에하라에게는 사랑과 연민을 그리고 나오지는 자신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자살에 대한 정당성을 구구절절하게 얘기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런 부분들만 본다면 작가인 다자이 오사무 특유의 자기 파괴적인 부분을 상징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장면들이 아닌가 생각된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사양(斜陽)’의 뜻은 지는 태양을 말한다. 귀족 집안의 몰락과 비극적 자기 파괴적인 모습에서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작가인 다자이 오사무 또한,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집안의 몰락으로 인해 자기 파괴적인 모습을 보이며,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한 끝에 다섯 번째에 자살로 인해 세상을 떠난 비극적인 작가로 남아있다. 현실 속의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막장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나츠코가 독백으로 얘기하는 장면 속의 인상적인 문장이 있어서 소개해 본다.
지금까지 이 세상 어른들은 혁명과 사랑, 두 가지를 가장 어리석고 흉측한 것이라고 우리에게 주입해, 전쟁 전이나 전시에나 우리는 배운 대로만 알고 있었는데, 패전 후, 우리는 이 세상 어른들을 민을 수 없게 되었다. 뭐든 그 사람들이 말하던 것과는 반대로 하는 것이 진정 살길이라 여기게 됐다. 혁명도 사랑도, 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좋고 맛있고, 그러니까 좋은 일이라서 어른들은 못된 심보로 우리에게 설익은 포도라 이르며 틀림없이 거짓말을 한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확신하고 싶다. 인간은 사랑과 혁명을 위해 살아왔다고.
‘사양’은 전체적으로 밝은 분위기의 소설은 분명 아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전체적인 스토리 전개 방식이 작가의 의도대로 무색무취한 느낌의 암울하고 어두운 분위기로 진행된다. 아마 색깔이 없는 마치 회색만이 존재한다는 느낌과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소설이다. 옛날에 보았던 무성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소설이 주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색상이 떠오르지 않는다. 분명 읽어보면 좋은 소설임에는 틀림없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너무 깊게 빠져 들지 않았으면 한다.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우울함이 잠시 밀려왔던 느낌이 있다. 아마 기분 탓이려니 넘기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마지막 장면에서만은 절망만 얘기하고 있지는 않는다. 가즈코는 태어날 아기를 위해 아주 작은 희망을 얘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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