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저 황보름 · 클레이하우스 · 2022.01.17 · 한국소설
2023.10.23 ~ 10.26 · 9시간 39분
지난 여름이었을 것이다. 킵해 놓은지… 묻어 둔 책들 중에서 그리고 읽어야 될 책 중에서 유독 이 책만은 등한시된 이유를 설명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늘 책을 검색하고, 읽고 싶은 책을 저장해 둔다. 때문에 오랫동안 쌓아 둔 책이라면 후 순위로 밀리기 마련이라는 구차한 설명이 해명이 될까. 어쩌면 이 책은 쌀쌀한 가을 날씨에 읽기 좋은 책이라고 소개하고 싶은 책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따뜻함과 가볍게 스며들듯 잔잔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책으로 권하고픈 마음이 있다.
이 책은 간단하게 얘기하면 휴남동에 새로운 서점이 생기면서 서점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또한, 서점을 찾아오는 사람들과의 인연, 그리고 그들이 겪고 있는 고민거리들을 하나씩 해결해 가는 이야기들이 풍족하게 담고 있다. 또한, 소설 속 배경이 되는 휴남동 서점과 같은 서점과 우리 동네에도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이 소설을 통해서 좋을 것 같은 생각을 해 보게 된다.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을 살펴보면, 휴남동 서점을 운영하는 영주는 이혼의 아픔을 간직하고 책을 좋아해서 서점을 개업한 인물로, 서점에서 바리스타 아르바이트를 하는 민준은 취업에 실패하고 부모님의 질타에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는 인물로, 그리고 로스팅 업체 대표인 지미는 철없는 남편으로 인해 힘든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역으로, 고등학생인 민철은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며, 사는데 아무런 재미가 없다고 고민하는 역, 아들 민준을 걱정하면서도 뒤에서 응원하는 희주, 오랜 시간 동안 계약직으로 일하다가 정규직이 될 수 없는 것에 화만 쌓여 그만두고 서점에서 뜨개질과 명상을 하는 정서, 사는 것에 공허함을 느껴 한국어 문장 공부를 하며 서점 운영주인 영주를 좋아하게 되는 역으로 등장한다. 이렇게 각자 나름대로의 고민과 아픔, 그리고 상처를 품고 휴남동 서점에 모여 우정을 쌓고, 그들만의 연대감을 형성하며 스토리가 진행된다.
그들이 나누는 다양한 이야깃거리들은 진지함보다는 진솔하고 담백하게 풀어가며 그 속에서 서로에게 위로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며 물 흐르듯 진행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우리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인물들로 채워져 있다. 고등학생의 진로 고민, 취업이나 구직에 대한 고민, 남편과의 갈등과 이혼 그리고 가족 속에 담긴 이야기들은 다른 세상 속에 있는 이야기가 아닌 우리 주변에 많이 볼 수 있는 흔한 일들이다. 그런 이야기들을 과거에 연연하거나 미래를 내다보지 않는 오로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이 꽤 많이 현실적이고 설득력을 얻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다른 사람 또는 남 얘기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한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소설이다.
또한 단순하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들을 하고 마는 것이 아닌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한 나름대로 적절한 대안까지 제시해 주니 같은 고민이나 상처를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희망이라는 단어에 좋은 참고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렇다고 제시하고 있는 대안이 억지스럽지 않다. 전체 스토리 흐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읽는 이에게는 스스로에게 납득이 되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정도로 아주 쉽지만 구체적으로 접근하고, 해법을 제시하고 있어서 좋은 느낌을 갖게 한다.
뿐만 아니라 책 속에는 각자의 아픔과 상처를 풀어가면서 치유하는 과정 속에서 수많은 길잡이 같은 역할을 하는 이야기가 있고, 문장들이 있다. 하나하나 모두 소개할 수 없지만, 그 문장들 속에는 납득할 수 있고, 긍정적인 문장들로 채워져 있어서 스스로에게 힐링이 되는 기쁨도 누릴 수 있어서 좋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 속에는 수많은 선택과 결정을 해야만 하고 선택한 것들에 정답은 그 누구도 제시하지 못한다. 이유는 삶에 있어서 정답이 있는 수학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기도 하지만 알 수 없는 미래가 있기 때문이지 않나. 결국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 옳은 길인지, 아닌지를 알려면 그 길을 걸어봐야 한다는 점이다. 고민은 되겠지만 선택했다면 오로지 그 길에 한 발짝 내딛을 수 있는 용기와 도전, 그리고 집중만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 소설이 그런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은 비교적 많은 양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하나하나의 이야기 속에는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게 진행한다. 스토리 흐름 상에는 큰 변곡점은 없다. 급박하게 진행되지도 않는다. 그냥 자연스럽고 진행되다 보니 이야기 속에 빠져드는 집중력이 저절로 생긴다. 아마도 다양한 에피소드 모두가 공감을 가지는 이야기들이지만, 중에서 나에게 공감대를 형성하는 이야기가 있어서 일 것이다. 인생에 있어서 성공은 물질적인 것보다 좋은 사람과 함께할 수 있다는 점을 이 소설은 이야기하고 있다. 내 인생 속에도 좋은 사람들만 가득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인상적인 문장
우리 삶을 이끄는 건 다른 무엇도 아닌 우리의 선택인 것이 아닐까.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민준은 문득 자기 역시 그때 포기를 한 것이 아니라 선택을 한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길을 벗어나겠다는 선택.
삶은 일 하나만을 두고 평가하기엔 복잡하고 총체적인 무엇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불행할 수 있고,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도 그 일이 아닌 다른 무엇 때문에 불행하지 않을 수 있다. 삶은 미묘하며 복합적이다. 삶의 중심에서 일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렇다고 삶의 행불행을 책임지진 않는다.
흔히들 현재를 살라고 말하잖아요. 그런데 말이 쉽지 현재에 산다는 게 도대체 무슨 뜻이죠? 현재에 산다는 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그 행위에 온 마음을 다해 집중한다는 걸 말해요. 숨을 쉴 땐 들숨 날숨에만 집중하고, 걸을 땐 걷기에만 집중하고, 달릴 땐 달리기에만. 한 번에 한 가지에만 집중하기. 과거, 미래는 잊고요.
일을 하는 순간에도, 일을 하지 않는 순간에도 나 자신을 잃지 않아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도 있다. 일을 하는 삶이 만족스럽지도 행복하지도 않다면, 하루하루 무의미하고 고통스럽기만 하다면,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나에게 주어진 단 한 번의 인생을 살고 있으니까. 민준 씨는 휴남동 서점에서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나요? 혹시, 민준 씨를 잃어버린 채 일하고 있지는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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