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 증명
저 최진영 / 은행나무 / 2015.03.30 / 한국소설
독서기간 : 2021.11.25 ~11.30
오래전부터 익히 알고 있었던 소설 중의 한 편으로 '최진영' 작가의 중편 소설로 《구의 증명》을 읽게 되었다. 책 표지만 보면 어떤 소설인지 인지하기 어렵다. 책의 제목이 한가운데 세로로 쓰여 있고, 상단에 두 사람이 타고 있는 작은 돛단배가 그려져 있을 뿐 이 소설이 가지는 매력을 책 표지만으로는 알아채기 쉽지 않다. 결국 소설의 내용을 봐야 이 소설이 어떤 소설이고 어떤 내용인지 알 수 있다. 그래서 궁금했고 읽어 버리고 말았다. 이 소설이 어떤 소설인지, 어떤 매력이 있는지...
'최진영' 이라는 작가의 소설은 처음이기도 하지만 《구의 증명》을 읽고 나니 다른 소설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특히 얼마 전에 읽었던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1〉에서 수상작인 "차고 뜨겁게'라는 제목으로 수상된 작품의 작가인 게 뜻밖이었고, 놀랍고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다. 뿐만 아니라 만해문학상. 백신애 문학상, 신동엽문학상. 한겨레문학상 등의 수상 경력이 있는 만큼 믿고 읽는 작가라는 생각에 다른 소설들도 궁금해졌다고 할 수 있고 기회가 된다면 더 많은 소설을 읽어 보고 싶어 졌다고 할 수 있다.
《구의 증명》은 두사람의 절대적이고 슬픈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흔한 이야기를 너무 많이 알고 있다. 드라마에서 영화에서 다양한 형태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에 그저 그런 사랑이야기를 알고 있을 테지만, 이 소설 속의 두 사람의 사랑은 조금은 특별한 사랑이라고 해야 할까? 암튼 이 소설 속의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를 알고 나면 조금은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까 생각한다. '구'라는 남자와 '담'이라고 하는 여자의 사랑이야기 속에는 조금은 흔하지 않은,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의 시작은 등장인물인 '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에서 시작한다. '담'은 죽은 '구'의 시체를 집으로 데려와 정성스럽게 앃기면서 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구'와의 어린 시절부터 회상하는 씬과 현재의 상황으로 이어지며 두 사람만의 사랑이야기가 이어진다. '담'은 죽은 '구'의 살점을 조금씩 씹어 먹으면서 죽은' 구'의 사랑을 자신의 몸속에서 고스란히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과 빚쟁이들에게서 오로지 '구'를 지키기 위함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담'은 '구'의 죽음을 아무도 몰라야 한다고 하면서 말이다. '구'를 살아있는 사람으로 기억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하지만 이야기를 더해가며 이러한 사실들에 대한 이유니 근거를 제시하며 나름대로의 설득력을 가지고 이야기는 진행된다.
조금은 기괴하기도 하지만 이런게 사랑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지 많은 사람들은 공감하기 어려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구'의 시체 옆에서 '담'의 독백이 이어지며, 사랑했던 연인과의 지난 시간이 전부인 과거를 회상하는 씬으로 이어지고, '구'와의 인연과 함께했던 시간들을 추억하게 된다. 사랑이라는 말과 행동은 모든 이들에게 설렘을 주고 행복함을 주고, 따뜻함을 전해 준다. 이 둘의 사랑도 그렇게 우리의 평범한 사랑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주는 특별한 의미는 이 두 사람에게도 전해졌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랑이라는 단어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비롯되었지만, 항상 순탄한 사랑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한 것은 늘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 자체가 어려운 것처럼... 그렇게 둘의 사랑도 영원히 지속되어야 할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하나는 남고 하나는 떠나보내야 하는 산 자의 심정을 작가는 고스란히 이 책에 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둘의 사랑도 그리 순탄치는 않았던 과거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다. 만나고 혜어지고, 다시 만나면서 '담'은 아마도 운명적인 사랑을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둘의 삶 또한 순탄하지 않은 환경을 가지고 있다. '구'의 부모님이 사채 빛으로 인해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었으며, '담'은 이모와 단둘이 살아가는 여자로 그 부모가 누구인지 알 수 없이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둘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살아가지만 그 사랑마저 힘겹게 이어가며 운명의 끈을 놓지 않으며 애쓰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아이가 둘의 앞에서 죽는 순간을 목격하고 난 다음, 둘은 긴 시간 동안 멀리서 그저 바라만 봐야 하는 동안에도 둘은 언젠가는 서로에게 돌아올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은 애처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 둘은 다시 재회하며 빚쟁이들을 피해 전국 각지를 떠돌아다니며 잠시나마 행복했던 순간들도 만들어 가기도 한다.
갑작스럽게 '구'가 세상을 떠나면서 겪게 되는 상실감과 비통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이어졌을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담'은 얘기한다. '만약 네가 먼저 죽는다면 나는 너를 먹을 거야. 그래야 너 없이도 죽지 않고 살 수 있어'라고... 그렇게 둘은 운명이라는 굴레에 슬프고 지독한 사랑을 했던 것이다. 또한, 특이한 부분은 죽은 '구'의 시선으로 '담'을 바라보는 시점이 있다. 영혼이 되어버린 '구'가 자신의 살점을 씹어 먹고 있는 '담'을 바라보는 장면에서는 애절하게 느껴지는 부분을 소개한다.
"나는 너와 있는데, 너는 나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니 네가 여기 없거나 내가 여기 없거나 둘 중 하나 아닐까 싶다가도, 고통스럽게 나를 뜯어 먹는 너를 바라보고 있자니 있고 없음이 뭐 그리 중요한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있든 없든 그건 어디까지나 감각의 영역일 텐데, 나는 죽은 자다. 죽어 몸을 두고 온 자에게 감각이라니 무슨 개소리인가. 하지만 느껴진다. 나는 분명 너를 느끼고 있다."
사랑하는 연인의 생명이 꺼지고 있을 때, 우리는 상상할 수 있다. 죽은 자를 바라보는 산 자의 상실감, 그리고 비통함을, 허무함을 그렇게 산 자는 죽은 자와의 모든 기억과 추억들은 과거 속으로 흘려 보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익히 잘 알고 있다. '담'이 '구'를 떠나보내는 것처럼. 그렇게 '담'은 또 다른 의미에서 살아가게 되겠지만 말이다.
이 소설 《구의 증명》을 다 읽고 마지막 장을 덮은 순간까지도 뭔가 알 수 없는 여운이 남는 듯 한 것은 왜일까. 조금은 알 것 같은, 어렴풋이 느껴질 법한 내용인데도 가슴속에 뭔가 응어리가 풀리지 않는 개운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답답함만이 전해진다는 느낌이 맞을 듯하다. 단순히 지독하고 절대적인 사랑이야기가 아닌 연인의 갑작스러운 죽음 뒤에 겪게 되는 산 자의 상실과 조금은 특별한 애도의 의미를, 또는 죽음이 가지는 의미를 작가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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