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네시
저 아멜리 노통브 / 역 김남주 / 열린책들 / 2012.11.20 / 프랑스소설
독서기간 : 2021.11.30 ~ 12.03
참으로 오랜만에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을 읽게 되었는데, 2018년 11월에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이라는 소설을 읽었고 두번째 소설을 《오후 네시》라는 소설을 읽게 되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세살〉이라는 소설에서 인상적인 내용으로 몇 안 되는 소설로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는 몇 안되는 소설 중에 하나다. 그리고 잊고 있었던 '아멜리 노통브' 작가의 소설을 읽게 되어 반갑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기대와 흥미에 취해 읽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야기의 시작은 은퇴한 노부부가 도시 생활에서의 혼잡한 생활을 접고 한적한 시골에 자신들만의 집을 갖게 되고 행복한 꿈에 잠기려 할 때, 이웃 주민이 방문하면서 뜻하지 않은 일들이 벌어진다. 이웃인 남자는 70대에 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첫 방문 시에는 호의롭고 친절하게 예의있게 맞이해 주지만 늘 오후 4시만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이웃으로 인해 행복해야 할 자신들의 삶이 점점 악몽으로 변화되어 간다. 제 집 드나들듯 늘 같은 시각, 늘 같은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며 늘 두 시간이 지난 6시에 집으로 돌아간다. 하루도 빠짐없이...
또한, 이웃의 이름은 베르나르뎅이라는 인물로 무뚝뚝하며 대화를 할 줄 모르는 사람처럼 단답형으로만 얘기한다. '예', '아니요'가 아닌 대부분 '그렇소' 내지 '괜찮소' 이 두 마디 만으로 대화를 한다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노부부는 그에게 점 더 긴 대화를 이끌어 내며 이웃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갖은 애를 쓰지만 무위로 끝나고 아주 가끔은 조금 긴 문장으로 얘기를 하기는 하지만 대화를 이어갈 만한 소재가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쯤이면 이 소설을 읽는 사람도 조금씩 짜증이 내고 있다면 이미 이 소설에 몰입을 했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그런데 더욱 이상한 점은 읽으면 읽을수록 이웃인 70대 의사에게 짜증이 날 법 하지만, 그 반대로 노부부에게서 짜증을 유발하는 모양새가 아이러니하다는 점이다. 노부부는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까지 왜 이웃을 자꾸 받아 주는지... 노부부의 대화 속에서 답답함과 짜증을 느껴지는 것은 정녕 나만 그런 것인지...
그도 그럴 것이 노부부는 이웃인 베르나르뎅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과 자신들의 행복해야 할 생활이 이웃으로 인해 상당한 침해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찾아오는 이웃에게 문을 열어주는 이유를 스스로를 변호하듯이 독자들을 설득하고 있다. 찾아오는 손님은 공손하게 예의 바르게 맞아야 한다는 것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받아 온 교육 때문이고, 자신은 라틴어를 가르치는 교육자라는 지식인이라는 점을 들고 있다. 그런 이유로 오후 4시에 어김없이 찾아온 이웃을 그냥 돌려보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게 한적한 시골로 이사 온 이후 두어 달 동안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노부부는 이웃을 위해 문을 열어 주고 대접하던 시간들이 지나면서 자신들은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
그렇게 아무런 소득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면서 자신들의 내면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며 자신에 대해서, 또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내면의 모습에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계기가 된 것 같은 생각이다. 이 부분은 자의에 의해서 발현되기는 하지만, 결국 이웃으로 인해 자아에 대한 스스로의 진지함을 그리고 고뇌를 엿볼 수 있는 부분들이 많이 등장한다.
극의 흐름은 중후반을 넘으면서 이웃의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아가게 되고 노부부는 그런 이웃에 대해서 나름대로 정의를 내리고 이웃을 돕기에 이르게 된다. 노부부가 이웃인 베르나르뎅의 부인을 집으로 초대를 하며 반전으로 이어진다. 베르나르뎅의 부인은 엄청난 거구이며, 살이 너무 쪄 이목구비가 보이지 않는 모습과 말도 알아들을 수 없고, 오로지 먹는 것에만 반응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게 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베르나르뎅은 자살을 시도하고 노부부가 구해주며, 베르나르뎅이 입원해 있는 동안 부인을 보살피게 된다. 그때부터 노부부는 이웃에 대한 상황을 인지하고 베르나르뎅의 부인을 돕고 싶어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는 베르나뎅은 그런 친절을 거부하게 된다.
《오후 네시》는 조금은 독특한 소설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다. 처음 시작은 가볍고 경쾌하게 진행되고, 이웃을 만나면서 상황이 바뀐다. 노부부의 친절함과 이웃과의 관계를 생각해 최대한 예의에 벗아나지 않게, 정중하게 대접하는 모습과 대조적으로 이웃의 반응을 살피는 모습이 조금은 위트있게, 호기심을 자극하며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후반으로 넘어가면서 노부부의 사색과 이웃을 돕고 싶어 하는 모습, 그리고 그에 반하는 이웃의 모습 속에서 조금은 무거운 주제의식을 갖으며 진행되고 있다.
이 소설 속에는 크게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 첫 번째는 '내가 나 자신에게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나는 누구인지'라는 어려운 명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 이야기를 할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그리스 신화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신들의 예를 들며 이야기하는 부분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타인과 대화를 하기 위해 자신이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런 모습 속에서 나 자신은 어떠해야 하는지 등의 노부부의 대화 속에서, 불면증에 시달리는 순간에서도 독백처럼 생각하는 부분들에서 잘 드러내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있다. 나와 이웃과의 관계, 또는 나와 타인과의 관계를 후반으로 넘어가면서 비중 있고 무겁게 다루고 있다. 노부부는 자신들의 집에 찾아온 이웃과의 관계를 설정하고 형성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이웃은 침묵으로 일관되게 행동한다. 그리고 이웃을 돕고자 하는 마음과 그런 노부부의 친절함에도 불구하고 반하는 이웃의 마음을 그리고 행동을 돌리기 위한 노력들을 보며, 요즘 우리의 이웃들은 어떠한지 그리고 나와 이웃의 관계는 어떤지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된 듯하다.
세상은 나 혼자 살아갈 수 있는 건 분명 아닐 것이다. 타인과의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타인과 대화를 하고 서로 부대끼며, 싸우면서도 함께 웃을 수 있고, 함께 식사를 하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다. 이 논리는 인간이 나타나면서부터 변화되지 않는 유일하고 고유한 성향이다. 그렇게 자신과 타인과의 관계를 설정하고 형성하는 것은 인류사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된다. 그렇기에 《오후 네시》라는 소설이 주는 의미는 시사점이 크다고 생각할 수 있을 듯하다. 그리고 작가인 '아멜리 노통브'는 우리의 평범한 일상에서 스쳐 지날 수 있는 관계를 통해서 아주 멋진 소설을 쓰지 않았나 생각한다.
처음에는 가볍게, 중반에는 호기심이, 후반에는 무거운 주제의식을 드러내며 조금은 독특한 소설이라고 얘기하고 싶다. 자아를 발견하게 하고 인간관계에 대해서 소설 속의 스토리로 풀어 나가는 방식이 그렇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아멜이 노통브'의 소설을 오랜만에 읽어서 그런지 예전의 느낌은 전혀 떠오르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한 가지의 주제의식을 가지고 고속도로를 달리 듯 일관되게 펼쳐놓고 있다. 군더더기라고는 느껴지지 않을 만큼의 간결한 문체로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정도라 할 수 있다. 내용이 상당히 많은 것도 아니고, 사건 사고가 많은 것도 아닌지라 후반으로 넘어가면서 진지함과 무게감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재미있고 흥미로운 소설임에는 틀림없지 않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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