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도시
Blindness
저 주제 사라마구 · 역 정영목 · 해냄 · 2022.10.20 · 스페인소설
2024.02.14 ~ 02.23 · 10시간 47분
2022년 10월 ‘주제 사라마구’의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그의 대표작을 스페셜 에디션으로 출간된 소설이다. 1998년 초판을 시작으로 2022년에 이르기까지 24년 동안 100쇄 이상을 찍기도 했던 소설이다. 때문에 초판 버전의 표지로 새롭게 단장한 것도 기념할 만한 일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이 소설을 2008년에 영화화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하는데, 내 기억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면 아마 영화는 보지 않았을 것 같아서 원작인 소설을 읽어 보게 된 소설이다. 영화화된 소설이 원작이면 소설을 읽지 영화는 보지 않는 편이다. 개인적으로 소설을 영화화해서 실망한 것들이 꽤 있어서 그런 것일 듯하다.
주제 사라마구 작가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어서 검색해 보았다. 1922년 포르투갈 중부 지역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고, 1969년에 공산당에 입당해 반정부 공산주의 컬럼리스트로 활동해 오다가 1975년에 국외로 추방되었고 생계를 위해 번역가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1979년부터 전업 작가로 살며 소설, 시, 희곡 등 다양한 작품활동을 하기도 했다. 주제 사마라구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로도 유명한 작가인데, 작가의 작품 성향이 주는 영향력 때문이 아닌가 하는 개인적인 생각을 해 본다. 작가는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사실주의와 정치적인 실험적 요소들을 통해서 살아있는 등장인물을 이용해 독창적인 글쓰기를 한다고 했다. 또한 주제 사라마구는 환상적 리얼리즘과 개인과 역사적 현실과 허구를 넘나들며 비유와 신랄한 풍자의 경계 없이 상상력만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문학세계를 구축해 왔다는 설명이 있다.
그렇다면 주제 사마라구가 쓴 소설 중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고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눈먼 자들의 도시’는 어떤 소설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을 듯하다. 어느 날 갑자기 눈앞이 우윳빛처럼 하얗게 보이는 실명이라는 전염병으로 도시 전체가 마비된다. 시대적 배경은 알 수 없다. 자동차가 다니고 있는 것을 보면 비교적 현대적인 시대인 듯하여 추측하건대 1990년대 초중반쯤 되는 시대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은 이름이 없다. 아니 있지만, 단 한 번도 거론되지 않는다. 이미 앞이 보이지 않는 실명 상태에서는 이름이 무슨 소용인가 싶을 것이다. 때문에 주요 인물들은 인디언 이름처럼 처음 눈이 먼 남자, 그리고 그의 아내, 안과의사, 그리고 안과의사의 안내, 검은 안대를 한 노인(한쪽 눈이 없음), 검은 색안경을 쓴 여자 등 이런 식으로 등장한다.
때문에 대화를 할 때, 서로를 부르지 않는다. 그냥 누군가 말을 하면 받고, 누군가가 대답하는 식으로 대화를 한다. 그나마 위에서 말하는 식으로 부를 수 있는 것은 안과의사의 아내만 눈앞이 보이는 데서 기인한다. 안과의사의 아내는 앞이 하얗게 보이는 실명이라는 전염병에 유일하게 걸리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소설의 모든 스토리는 안과의사의 아내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사람이라도 보이지 않으면 스토리가 진행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소설은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소설 속에는 구분 없이 끝까지 진행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세 가지로 구분하여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첫 번째는 실명이라는 전염병이 어느 날 갑자기 발병되어 처음으로 눈이 먼 남자가 아내와 함께 안과 의사를 찾는다. 처음으로 눈이 먼 남자의 안과의사의 진단은 눈에는 아무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때부터 전염병이 돌기 시작한다. 안과의사는 보건당국에 신고하고 보건당국은 감염자들을 수용할 곳을 찾다가 우연히 방치되어 있던 정신병동을 알게 되고 감염자들을 강제 격리 조치되어 수용하기 시작한다.
두 번째는 정신병원을 수용소로 강제 격리되어 눈이 먼 자들의 생활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감염자들은 수용소에서 지내는 동안 비참함 그 자체이다. 수용소라는 곳은 오랫동안 버려진 정신병원으로 물도 제대로 나오지 않고, 전기도 희미해서 빛만 보일 뿐이다. 또한, 수용소를 지키는 군인들은 이들에게 규칙을 정하게 하고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 바로 사살해 버리며, 음식을 제 때 주지 않아 서로 자신의 잇속만 챙기게 된다. 감염자들이 수백 명에 이르게 되면서 통제가 불가능에 가깝게 되고, 배급되는 음식을 독차지하는 범죄자들이 등장한다. 앞이 보이지 않는 눈먼 자들은 어쩔 수 없이 그들에게 돈이나 귀중품을 바치며 음식을 나눠주곤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여의치 않자 각각의 감염자들의 방 별로 여자들을 취하면서 음식을 나눠주기 시작한다. 안과의사 아내는 이들을 지켜보다가 범죄자들의 우두머리를 죽이게 된다. 안과의사의 아내는 여전히 감염되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다.
세 번째는 수용소인 정신병원에서 안과의사의 아내는 눈먼 자들과 함께 탈출하여 도시에서 떠돌게 된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먹을 것을 찾는 것이기에 안과의사의 아내는 눈먼 자들을 위해 음식을 찾으려 도시 곳곳을 헤매게 된다. 그리고 눈먼 자들은 자신들이 살았었던 집의 상태를 확인하고 싶어 했다. 아직도 눈이 멀지 않은 안과의사의 아내와 함께 눈먼 자들의 집을 찾아가게 되고, 여전히 안과의사의 아내는 음식을 찾으려 도시를 헤매고 다닌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처음 눈이 먼 남자가 앞을 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두 번째로 안과의사가 앞을 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하나씩 앞을 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안과 의사의 아내는 앞이 보이지 않게 된다.
아마도 위의 세 가지 내용 중에는 스포도 있을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스토리를 통해서 느낄 수 있는 인간성이 사라진 것에 대한 비참함과 처참함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것이 내 머릿속에는 가장 인상적인 것이 되었다.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과 말을 할 수 없다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 같은 느낌 그 자체 말이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 어디를 갈지 알 수 없고, 낮인지 밤인지 조차 구분되지 않는 세상 속에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새삼 깨닫게 되는 것도 묘한 느낌을 준다. 그만큼 소설 속에는 눈먼 자들의 세상 속을 말하는 작가의 정교하고 디테일한 묘사에서 오는 소름 돋는 작가적 상상력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이 때문인지 이 소설은 모든 것에 대한 작가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실험하듯이 상황 설명과 장소에 대한 묘사까지도 허투루 다루지 않고 있다.
또한, 위에서 몇 차례나 얘기했듯이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안과의사의 아내는 눈먼 자들을 인도하고 때로는 보듬기도 하며, 그들을 위해 음식을 마련하는 모습 속에서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로지 눈먼 자들을 위해서 헌신하는 모습과 최소한의 인간성이 사라지지 않게끔 도와주는 모습에 인도주의적인 상징성을 보여 준다고 봐도 좋을 듯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한, 자신이 앞을 보지 못했을 때에는 자신이 눈먼 자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을 법하다.
이 소설에 가장 중요한 점은 인간이 실명하게 되면, 그리고 겪게 되는 일상을 과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또한 인간이 눈이 멀었어도, 물질적 소유는 버리지 못한다는 점이다. 소설 속에는 수용소에 범죄자들이 음식을 독차지하고 같은 감염자들의 귀중품을 요구하게 되는 장면이 있는데, 각종 귀중품과 돈이 솟아져 나온다. 이 소설에서 이런 부분을 지적하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볼 수 있을 듯하다. 결국 가진 것을 잃었을 때, 비로소 가진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고 작가가 무엇을 얘기하고 싶었는지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또한, 이 소설 속에서 눈먼 자들이 함께 도와가며 의지하면서 진정한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본질적인 이유를 찾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위에서 얘기했듯이 이 소설은 방대한 양이 주는 압박감이 있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스토리가 진행하면서 오히려 집중력과 몰입감이 생기게 되고,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된다. 장황한 상황 묘사에서 보이는 상세하고 세밀한 장면들을 머릿속으로 그리면서 읽는 재미가 있다. 뿐만 아니라 상황이 주는 철학적 묘사도 적절하게 내포하고 있다. 어찌 보면 심오한 부분들도 담고 있기는 하지만, 그런 부분들도 독서가 주는 재미가 아닌가 생각한다. 많은 분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하고픈 소설이 될 것 같고, 2024년 초이기는 하지만, 최고의 소설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상적인 문장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나는 사람을 죽였어요. 사람을 죽였다고요, 첫 번째로 눈이 먼 남자가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네, 좌병동에서 명령하던 깡패를 죽였어요, 가위로 목을 찔러 죽였어요. 검은 색안경을 썼던 여자가 말을 받았다, 사모님은 우리의 복수를 하려고 죽인 거예요, 여자의 복수는 여자만이 해줄 수 있어요, 복수도 정의롭기만 하면 인간적인 거예요, 부정한 방법으로 피해를 준 사람에 대해 피해자가 아무런 권리도 가질 수 없다면 정의도 있을 수 없어요. 그럼 인간이고 뭐고 없는 거지,
<중략>
눈이 멀었다’라는 사실은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눈이 멀었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많은 것을 잃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실제 소유는 현대 산업 사회에서 기본적인 생존 양식으로 우리는 일상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자신의 가치와 존재를 확인한다. 그러나 이 소설을 다 읽고 난 후에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잃었을 때에야 가지고 있는 것이 정말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물질적 소유에 눈이 멀었을 뿐 아니라 그 소유를 위해 우리의 인간성조차 쉽게 말살하는 장님이기에 눈을 비벼 눈곱을 뗀 후 세상을 다시 보아야 한다는 필요성을 새삼스레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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