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견자들
저 김초엽 · 파블리온 · 2023.10.13 · 한국소설
2024.02.26 ~ 02.28 · 10시간 01분
4번째 읽는 김초엽 작가의 책이다. 지금까지 읽은 김초엽 작가의 소설과는 결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김초엽 작가를 잘 아는 독자라면 그를 SF 작가로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파견자’들에서는 SF라는 장르 소설이라기 보다는 인간성을 얘기하는 모습에 조금은 색다른 소설이라고 얘기하는 편이 나을 듯싶다. 물론 SF 라는 장르가 가지는 특징을 버린 것도 아니다. 곳곳에 SF의 느낌을 받을만한 장치들은 있지만, 전체 스토리에서 느낄 수 있는 부분은 적은 편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듯하다.
김초엽 작가의 소설 중에서 이와 비슷한 장편소설이 있다. ‘지구 끝의 온실’이라는 소설 속에는 ‘더스트’라는 절망으로 물든 세계, 푸른 빛을 발하는 덩굴식물 ‘모스바나’를 통해서 작은 변화를 일으킨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작은 울림을 준 소설이다. 적어도 나에겐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일까 이 소설 ‘파견자들’도 그와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으면 하는 작은 기대감을 가졌던 소설일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인류의 먼 훗날을 그리고 있는 듯하다.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몇 백년은 지난 듯한 얘기들을 하고 있다. 인간에게 광증을 일으키는 아포(세레우스균이나 고초균 등의 세균에서 보이는, 건조/고온/약품에 매우 강한 저항성을 나타내는 세포구조. 일반적인 세균은 사멸하는 환경 조건에서도, 아포를 형성하는 능력을 가진 세균은 살아 남음)로 가득찬 지상 세계로 인해 인류는 살기 위해 지하 도시로 떠밀려 삶을 이어가게 된다. 지하세계로 떠밀려 살게 된 인류는 지상으로의 삶을 이루기 위해 ‘범람체’라고 하는 아포들과 싸워 나갈 수 있는 ‘파견자’들을 양성해 지상으로 투입하게 된다. 지하세계에서도 범란체로 인해 감염되어 광증을 보인 인간들이 나타나게 되고, 이들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리고 범람체에 감염된 체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간이 등장하여 인류와 함께 상생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런 주된 스토리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주인공인 ‘정태린’이라는 파견자가 되기 위해 열심히 훈련하는 여자로 등장한다. ‘이제프’라고 하는 인간에게는 영웅으로 비춰지는 유능한 파견자가 있었고, 정태린은 이제프의 영향을 받고 이제프 처럼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게 된다. 정태린은 머리 속에서 알 수 없는 자아를 가진 생명체인 범람체와 살아가게 된다. 정태린이라는 자아와 자아를 가진 범람체가 하나의 몸에서 살아가게 된다는 의미이다. 정태린은 자아를 가진 범람체에게 ‘쏠’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게 되고 많은 도움을 받게 된다. 때로는 다른 범람체와 대화하기 위해서 해석을 해 주기도 하고 길을 안내해 주기도 하지만, 정태린의 몸을 빼앗아 직접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생명체라고 할 수 있다.
이제프라는 인물은 유능한 파견자로 범람체는 인간에게 있어서는 안되는 존재로 반드시 죽여야만 하는 사명을 지닌 여자로 유치원이라는 유명무실한 간판에 비밀 실험을 했던 실험실의 실험체로 살아왔던 어린 정태린을 입양을 하게 되지만, 지상으로 투입되어 범람체와 싸우는 파견자로 그리고 프로젝트 작전을 수행하게 된다. 정태린이 자신과 같은 파견자가 되겠다는 다짐을 가지며 함께 파견자가 되어 지상으로 갈 수 있는 날을 꿈꾸게 된다.
여기에서 중요한 극 중 매개체로 범람체라는 생명체가 등장하는데, 지적 능력을 가진 생물체로 외계에서 온 생물체로 보인다. 인간의 말을 하고, 생각할 줄 알고, 인간과 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또한, 범람체들과 그리고 범람체에 감염된 인간들과의 교감을 주고 받을 수 있다. 아주 오랫동안 지구에 서식하며 인류과 대립각을 세우며 싸워 가지만 그들은 지구에 있는 생명체와의 교감을 통해서 지식을 습득해 가며 영역을 확장하게 된다. 이는 정태린과의 교감을 통해 범람체는 위험한 생명체라는 인식은 하고 있지만, 감염자가 늘어 나면서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존재로 인정하게 된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위험할 수 도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은 범람체를 무조건 없에야만 하는 존재일 뿐이다.
정태린은 파견자가 되기 위한 최종 시험을 통과하고 지상에서 채집해 온 범람체를 실험실에 가져가는 순간에 ‘쏠’이 정태린의 몸을 이용해 습득한 범람체를 펴트리게 된다. 이 계기로 정태린은 아무도 살아 돌아오지 않았던 프로젝트를 수행하게 되고 일행과 함께 작전지역으로 탐사해야 할 장소로 이동하게 된다. 그리고 뜻밖에 장소에서 늪인들이 살아가는 늪지대에서 범람체들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정태린은 많은 혼란을 겪게 되고, 결국 자신도 범람체에 감연된 사실을 인지하며 살아갈 방법을 찾아가게 된다.
인간이기를 고집하기 보다는 나와 다른 생명채와 함께 살아가는 길을 택하더라도 삶은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지하에서 삶을 살아 갔다면 이제는 지상에서 범람체와 함께 살아가는 삶을 위해서 또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하며 정태린은 그렇게 살아가게 될 것이다. 지하에서의 삶에는 숨기고 감춰야 하는 삶이였다면 이제는 당당히 맞서며 살아가는 길인 것이다. 비록 자신은 인간으로 살아가지 못하더라도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 생명체가 있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존재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나와 다른 누군가를 인정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인정하겠고 또 어떤 사람은 인정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도 모두 같은 생각을 품고 사는 사람은 드문 일일 것이다. 결국 나와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 곧 상생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초엽 작가는 그런 점을 이 소설을 통해서 얘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와 다르다고 비난하고 비판해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마다 선택하는 기준이 다르고 존중하는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속에도 그런 의미가 많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피부색이 다름을 인정하고 민족이나 문화권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인정하는 사회는 더욱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너무 앞서 나가는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이 소설이 주는 의미는 이런 것들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상적인 문장
단지 불균형과 불완전함이 삶의 원리임을 받아들이는 것, 그럼에도 끊임없이 움직이며 변화하는 것,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것만이 가능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태린은 그것이 계속해서 다음 세대로 이어질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너의 일부가 될 거야. 어떤 기억은 뇌가 아니라 몸에 새겨질 거야. 너는 나를 기억하는 대신 감각할 거야. 사랑해. 그리고 이제 모든 걸 함께 잊어버리자.
원하면 원할수록 지표면은 손 아래에서 닳아갔다. 태린은 끊임없이 생각했다. 나는 지상으로 가고 싶은 것일까. 지상을 얻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그 지상을 쫓는 사람을 갈망하는 것일까. 가본 적도 없지만 이미 손안에 들어온 행성이 눈앞에 있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밀려들 때마다 태린은 지구본을 돌렸다. 하지만 사실은 알고 있었다. 지상에도, 누군가의 마음에도 그렇게 쉽게는 닿을 수 없다는 것을.
이제프는 태린에게 지상을 주고 싶었다. 노을과 별들을 주고 싶었다. 단지 파견자가 되어 지상을 경험하고 오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언젠가 태린이 파견자가 될 수 있다면 이제프와 함께 지상을 보게 되겠지만, 그것은 갈망을 증폭하는 일일 뿐 진정한 의미에서 지상을 얻는 것이 아니었다. 지상을 돌려주기 위해서는 지상을 되찾아와야 했다. 별과 노을과 바다가 있는 행성은 다시 인간의 것이 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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