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
저 양귀자 · 2013.04.01 · 쓰다 · 한국소설
2025.02.24 ~ 02.25 · 6시간 5분
양귀자 소설을 언제 읽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모순’은 아니었던 거 같고, 아마 ‘천년의 사랑’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정확한 기억은 없다. 리뷰를 쓰기 이전에도 많은 책들을 읽기는 했지만, 모두 오래된 기억이라 쉽게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다시 읽는 책들이 많다. 당분간은 이런 기억 속에 내장되어 있는 책들을 다시 꺼내 보지 않을까 생각한다. 잊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 흐릿한 기억 속에는 양귀자 소설도 있으리라 짐작하고 있는 터에 만나 소설이 ‘모순’이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이 소설도 오랫동안 침전되어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읽히는 소설 중에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최근에도 베스트셀러로 자주 오르내리고 있는 소설로 기억되고 있다.
양귀자 소설을 많이 읽는 기억은 없다. 다만, 알고 있는 소설은 많이 있는 것 같다. ‘원미동 사람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천년의 사랑’, ‘숨은 꽃’ 등 출간된 소설들이 많이 있지만, ‘모순’으로 알게 되는 양귀자의 소설을 더 많이 읽게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작가 양귀자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들이 많이 없기는 하지만, 알고 있는 것 중에서 하나를 얘기하자면 3년 주기설이 있다는 사실이다. 3년 간격으로 펴내는 책들이 모두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인데, ‘모순’도 3년 주기설에 포함되는 소설 중에 하나일 것이다. 작가 양귀자의 소설들은 누구나 쉽게 읽히는 문장력과 소설적 구성이 탁월하다 할 수 있는 점들이 독자들로 하여금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모순’을 읽다 보면 그런 점들이 잘 드러내고 있는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을 법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모순’은 주인공 ‘안진진’의 일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며, 안진진을 중심으로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우리들의 일상적인 모습 속에 안진진이라는 특별함을 찾아볼 수 없는 소시민의 삶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런 일상적인 이야기 속에 뭔가 특별함을 느끼게 해 주는 장치도 없을 정도로 주인공의 가족사와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물 흐르듯 천천히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안진진은 안진진이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아버지가 ‘진’이라는 외자로 이름을 지으려 했으나, 출생신고할 때, 변심을 하여 진진이라는 이름으로 신고를 했다는 것이다. 성을 합쳐 부르면 진지해지지 않는 점은 고려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학창 시절, 친구로부터 시작된 가출을 몇 번을 하게 되지만, 결국 대학까지 진학하게 된다. 하지만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인해 등록금을 내기 어려워지자 휴학을 하게 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아야 하는 처지에 있는 25살의 미혼 여성으로 등장한다.
먼저, 안진진의 불운한 가족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아버지는 엄마와 결혼 후 무직으로 가정 폭력을 일삼으며 가족을 많이 힘들게 한 장본인이다. 급기야 아버지 대신 엄마가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되고, 시장에서 양말과 속옷을 판 돈을 집안 여기저기에 숨겨 놓으면 아버지는 기어코 찾아내 돈을 모두 소비해 버릴 때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는 그런 아버지였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5년 동안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였다. 진진에게는 ‘진모’라는 남동생이 하나 있다. 고등학생 때부터 사고뭉치로 군대를 다녀온 후부터는 모래시계의 최민수와 대부의 말론 브란도를 보며 조직의 보스를 꿈꾸게 되지만, 결국 살인미수로 구치소에 가게 된다. 엄마는 생계를 위해 시장에서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고생을 한 인물로 억척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인물로 등장한다. 특히 ‘진모’를 위해서는 물불 안 가리고 챙기는 모습은 예전의 모든 어머니들이 그러했듯이 아들을 제일로 삼았던 삶이 떠오른다.
그리고 엄마의 일란성쌍둥이 동생인 이모와는 특별한 관계에 있는 안진진은 이모를 친엄마보다 더 무척 좋아하며 이모 또한 안진진을 친 자식처럼 애지중지한다. 때로는 서로에게 의지하기도 하지만, 안진진으로서는 쌍둥이 자매인 엄마와 이모이지만 서로 너무 다른 삶을 살아가는 모습에 엄마보다는 이모에게 더 애착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마저 든다. 이모는 엄마와 다르게 건축사 사무실을 운영하는 좋은 이모부를 만나 남부럽지 않게 부유한 삶을 살게 되고 가끔은 안진진을 챙기는 모습을 보인다. 이모에게는 딸과 아들이 있지만, 모두 어렸을 때부터 미국으로 유학을 간 터라 외로움을 안진진에게 풀어 보는 듯해 보인다. 이모로부터 이모부에 대해서 전해 들은 이야기로는 심심한 남편이라고 얘기한다. 일 밖에 모르는 재미없는 남편으로 치부한다. 하지만, 유학 간 아이들은 미국에서의 삶을 영위하고픈 마음을 전해 들은 후로는 외로움과 삶의 힘듦이 누적되어 쌓여 온 것들로 인해 안진진에게 마지막 편지에 자신을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극단의 선택을 하게 되는 이모가 있다.
세 번째는 안진진 자신의 사랑이야기가 있다. 김장우와 나영규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어떤 사람이 더 나은 사람인지를 가려내려고 한다. 하지만 두 사람 다 모두 좋은 사람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김장우라는 사람은 야생화 전문 프리랜서 사진가로 활동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형의 사업의 실패로 함께 살아가야 하고, 형의 재기를 위해 물심양면 돕는 처지가 된다. 안진진과는 점진적으로 가까워지지만 나중에는 결혼까지 생각하게 된다. 김장우는 연애에는 서툴러서 인지 안진진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챙기는 모양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영규라는 인물은 부유한 집안에서 꾸밈없이 살아온 인물로 괜찮은 직장에서 근무하는 성실하고 적극적인 인물로 등장한다. 김장우와는 반대로 항상 계획적인 사람으로 철저하게 조사하고 분석하여 계획하에 움직이는 사람이다. 안진진과의 데이트 장소와 이동거리, 시간까지 모두 계획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인물이다. 꼼꼼함과 적극적인 자세, 그리고 모든 일을 계획적인 그의 모습이 안진진에게는 조금은 갑갑함을 느낄 법 하지만, 싫은 표정은 아니다. 결국에는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을 택해야 하는 순간이 오고야 만다.
이렇듯 이야기의 중심을 세 가지로 나눌 수 있고, 이 세 가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묘한 상황들이 자주 등장한다. 모두 안진진의 측면에서 바라보는 관점에서다. 즉 소설의 제목처럼 모순적인 상황들이라 할 수 있는데, 일단 아버지와의 관계에서는 가정 폭력으로 힘든 상황 속에서도 행방불명 상태인 아버지가 병들고 치매까지 걸린 모습으로 5년 만에 돌아온 아버지를 두둔하는 모습이 그렇고, 동생인 진모가 구치소에 들어가 있는 모습에서도 어딘가 모르게 진짜 조직의 보스처럼 보이기에 따스하게 바라보는 점도 그렇다. 엄마보다는 이모에게서 엄마의 모습을 느끼고, 김장우와 나영규 사이에서도 이럴 때는 이 사람이 좋은 것 같은데, 또 다른 모습에서는 저 사람이 더 좋은 듯한 모습에 어리둥절한 상황 전개가 나의 머리를 갸웃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또한, 이모는 친 자식이나 남편에게도 아닌 이종 사촌인 안진진에게 마지막 편지를 남기는 점, 그리고 그 편지에는 지루한 삶을 살아가는 자신보다 힘겹지만 부지런하게 살아가는 네 엄마의 삶이 무척 부러웠다고 했다. 특히, 엄마와 이모는 일란성쌍둥이로 한 날 한 시에 태어났지만, 극과 극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에 모순됨을 알게 된다. 안진진은 엄마와 이모 사이의 모순됨을 자신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민하는 순간들이 있다.
‘모순’을 통해서 나는 어렴풋이 남아있는 1990년대 후반의 모습과 그 시절의 환경들에 대해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자주 떠 올랐다. 당시의 정서적인 환경이 담고 있는 풍경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누군가에게서 올 전화를 기다리느라 전화기를 들고 다니던 모습에서, 컴퓨터가 일상적인 모습이 아닌 시절에 대한 것들이 그런 것들이다. 지금은 누런 빛으로 바랜 과거 속의 모습에서 나는 어떠했는지 가물가물한 기억이 새롭게 떠오르기도 했다. 아마 우리의 일상에는 모순 투성이라든가 모순 덩어리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들이 많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모순’은 많은 것들에 대해서 특별함을 주는 소설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안진진이 쌍둥이 엄마와 이모에게서 받았을 법한 삶의 방식에 대해서 고민한 흔적들처럼 말이다. 작가 양귀자는 이 책에서 다양하고 곱씹을 만한 문장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그 문장들은 아래에 남겨 본다.
특히, 작가 양귀자는 작가 노트에서 ‘모순’을 통해서 하고자 싶은 글들을 많이 담았다. 소설을 쓰면서 겪어야 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엿볼 수 있고, 고민한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 작가로서 가져야 할 자신만의 소양이나 가치들도 볼 수 있으니, 이 부분도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읽어 봤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작가 양귀자가 이 소설을 읽을 이들에게 한 가지 당부의 말을 전한다.
나는 ‘모순’을 쓰면서 이 소설을 읽는 모든 사람이 전부 ‘첫 독 자’이길 꿈꾸었다. 소설에 관해 유포된 어떤 독후감에도 침범당하지 않은 순수한 첫 독자의 첫 독후감들을 많이 만나고 싶었다.
인상적인 문장
‘뒤에 더 이상 이을 말이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내 인생의 볼륨이 이토록이나 빈약하다는 사실에 대해 나는 어쩔 수 없이 절망한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요즘 들어 가장 많이 우울해하는 것은 내 인생에 양감이 없다는 것이다. 내 삶이 부피는 너무 얇다. 겨자씨 한 알 심을 깊이도 없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 <'생의 외침' 중에서>
‘사람들은 작은 상처는 오래 간직하고 큰 은혜는 얼른 망각해 버린다. 상처는 꼭 받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하고 은혜는 꼭 돌려주지 않아도 될 빚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장부책 계산을 그렇게 한다.
- <'오래전, 그 십 분의 의미' 중에서>
‘세상은 네가 해석하는 것처럼 옳거나 나쁜 것만 있는 게 아냐. 옳으면서도 나쁘고, 나쁘면서도 옳은 것이 더 많은 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야. 네가 하는 박사 공부는 그렇게 단순한지 모르겠지만, 내가 살아 보는 삶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어. 나도 아직 잘 모르지만.’
- <'착한 주리' 중에서>
‘나의 불행에 위로가 되는 것은 타인의 불행뿐이다. 그것이 인간이다. 억울하다는 생각만 줄일 수 있다면 불행의 극복은 의외로 쉽다.’
- <'선운사 도솔암 가는 길에' 중에서>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우이독경, 사람들은 모두 소의 귀를 가졌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일 년쯤 전, 내가 한 말을 수정한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 <'모순' 중에서>
‘행복과 불행, 삶과 죽음, 정신과 육체, 풍요와 빈곤. ‘모순’의 창작 노트 곳곳에는 이런 종류의 복합어들이 아주 많이 발견된다. 흘려 쓴 글씨로 붙박여 있는 그 편린들은 굳이 지적하자면 주제에 관하나 내 마음의 무늬였다.’
- <'양귀자의 작가 노트' 중에서>
‘모순’은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었다. 그랬으므로 이 소설에 쌍둥이가 나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단 한 번뿐이 이 삶을 추적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나지만 둘이고, 둘이지만 하나인 인생 궤적을 보여주기 위해서 일란성쌍생아보다 더 적합한 장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소설이 중반에 이르렀을 때, 나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우리들 모두, 인간이란 이름의 일란성쌍생아가 아니었던가 하는 자각. 생김새와 성격은 다르지만, 한 번만 뒤집으면, 얼마든지 내가 너이고 네가 나일 수 있는 우리.’
- <'양귀자의 작가 노트' 중에서>
‘우리들 삶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모든 것이 모순투성이인 것이었다. 이론상의 진실과 마음속의 진실은 언제나 한 방향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다. ‘모순’은 무엇을 따라도 모순의 벽과 맞닥뜨려지는 인간과 삶에 관한 진술이었다. 세상의 일들이란 모순으로 짜여 있으며, 그 모순을 이해할 때 조금 더 삶의 본질 가까이로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 이상 구체성을 땐 제목은 없을 터였다.
- <'양귀자의 작가 노트' 중에서>
'Review > 읽은 것들에 대해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등어' 치열했던 80년대에서 90년대로 이어지는 고난의 세월과 그 속에 숨어 있던 진실된 사랑 이야기 (1) | 2025.02.20 |
---|---|
'콘트라베이스'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의 평범한 삶의 의미와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이야기하는 모노드라마 (1) | 2025.02.12 |
'인간쓰레기' 인간의 본성과 가치관, 도덕적 가치를 섬세한 필체로 탐구하는 아이작 싱어의 소설 (1) | 2025.02.10 |
'이처럼 사소한 것들' 사소한 것들에 진심이 담긴 의미에 대한 클레어 키건의 짧은 단상 (2) | 2025.01.31 |
'호밀밭의 파수꾼' 위선과 가식이 가득 찬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내면의 성장을 꿈꾸는 이들을 위한 소설 (1) | 2025.01.27 |
'심판' 근원적 인간 존재가 가지는 의미와 인간 부조리를 비판적으로 파헤친 카프카의 미완성 소설 (2) | 2025.0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