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를 것이다
정보라 환상문학 단편선 01
저 정보라 / 퍼플레인 / 2023.01.20 / 한국소설, 판타지, 미스터리
독서기간 : 2023.03.3 ~ 03.09 (8시간 11분)
정보라 작가의 소설을 읽을 때면 왠지 모를 몰입감과 집중력이 생긴다. ‘저주토끼’가 그러했다. 그리고 두 번째 읽는 소설인 ‘아무도 모를 것이다’에서도 동일한 경험을 하게 된다. ‘저주토끼’와 같이 10편의 단편들을 모았고, 대부분 작가의 초기 작품들을 선별했다고 했다. 단편집이라고 해도 모든 10가지 이야기 모두 재미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듯하다.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고, 기억 속에 흐릿하게 남은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흥미롭게 읽히는 부분들을 보았을 때, 작가가 이야기를 쓸 때처럼 나름대로 상상하면서 읽는 재미가 있는 것은 개인적으로 부정하지 못하겠다.
전작인 ‘저주토끼’에서 처럼 환상적이면서 미스터리한 장르적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다만 개인적인 생각으로 보면 이야기의 대부분에서 느껴지는 것들은 조금은 힘을 뺀 것 같은 느낌을 받았고,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차분하게 그리고 침착하게 다가왔다는 생각이 든다. 단편집이 주는 장점은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이 좋다. 물론 대부분의 단편집이 그런 것은 아닐 테지만, 정보라 작가의 단편집들은 조금은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고, 작가 사유적 상상력이 글로 더해져 독자로 하여금 흡입력과 집중력을 가지게 하는 힘이 느껴질 법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이야기 몇 가지는 간단하게 회상해 보면, 첫 번째 단편인 ‘나무’에서는 산에 갇혀 살던 사람이 산에서 탈피하여 바깥세상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비극적인, 자신으로 인해 나무가 되어버린 친구에 대한 죄책감과 책임을 이야기하고 있고, ‘산’에서는 이미 오랜 세월 동안 잊혀졌던 전설 속의 이야기가 되살아나서 겪게 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고, ‘Nessun sapra’에서는 러시아의 레닌그라드 포위전으로 봉쇄됐던 시기, 정신병동의 간호사가 담당하던 천재 소설가 죽게 되자 그의 시체를 먹었다는 내용으로 시작으로 기괴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완전한 행복’에서는 한 귀족이 참칭자로 인해 가문이 몰락하고 가족들은 모두 죽고 남자아이만 살아남게 되고,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참칭자를 죽이고 복수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무도 모를 것이다’의 대부분의 이야기에서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것은 복수라는 테마가 공통적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특히, ‘완전한 행복’의 마지막 장면에서 도망치는 참칭자를 뒤쫓아 가서 죽이는 장면 속에 늑대가 시체를 뜯어먹는 이야기를 소개하는 내용에서는 현실의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이 빨리 끝나고 나쁜 놈들이 얼른 몽땅 죽어서 전부 늑대에게 뜯어 먹히기를 소망한다”는 이야기하는 내용이 있는데, 작가의 사유적 견해이기는 하겠지만, 대담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것들을 보며 짐작하는 것은 정보라 작가는 대담함이 있는 직관적인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정보라 작가의 소설들 대부분에서 느낄 수 있는 것들은 모두 공통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전편인 ‘저주토끼’에서 처럼 조금은 우울하고, 쓸쓸하게, 담담함을 느끼게 된다. 의도적으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살아있는 모든 것에 가끔은 비정하고 냉철하게 판단하게 되고, 때로는 추악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글로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이 느껴지는 이유가 아닐지 생각한다. 그런 것들에 판타지적인, 그리고 미스터리 한 장르를 사용하기에 좋은 소재들로 구성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단편집 구성이기 때문에 내용이 주는 복잡함이라든가, 읽기 어려운 부분은 없다고 생각한다. 정보라의 소설에서는 작가가 얘기했듯이 어떤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소설은 아니다고 했다. 아래 정보가 작가의 말을 소개한다.
현실에서 더 멀리 떨어질수록 이야기는 (그리고 이야기를 읽거나 듣는 독자님들은) 더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그러나 그 혼란도 재미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독자님들도 그렇게 생각해 주시면 좋겠다. (…) 독자님들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었다. 부디 재미있게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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