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
STONER
저 존 윌리엄스 · 역 김승욱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01.02 · 영미소설
2024.03.15 ~ 03.19 · 8시간 56분
스토너는 1965년 미국에서 처음 출간되었지만, 50여 년이 흐른 뒤에야 빛을 본 특이한 소설이고, 작가인 존 윌리엄스가 사후 20년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제대로 평가받은 소설이다. 초판이 1년 만에 절판이 되었지만, 2010년에 유럽에서 재출간되며 선풍적인 인기에 힘입어 역주행 베스트셀러가 된 점도 특이한 소설이라는 점을 출판사 설명에서 잘 기록되고 있다. 스토너는 한 남자의 일대기를 담담하고 정적인 느낌으로 잘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인 소설이라 말할 수 있겠다.
윌리엄 스토너는 소설 속의 주인공이기도 하지만 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소설로 주인공의 청소년기에서부터 죽음까지의 과정을 잘 묘사한 작품이다. 이 작품 속에는 1910년대부터 진행되는데, 1차 세계대전과 미국의 대공황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살아가는 주인공의 고독한 삶을 잘 표현했다고 해도 좋을 듯하다. 사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대공황에 대한 서술적 표현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주인공의 시점에서는 그냥 스쳐 지나가는 배경 정도로 인식될 만큼이라 할 수 있고, 주인공의 1인칭 시점으로 전체 스토리가 진행된다.
소설의 첫 시작은 적막하다고 해야 할 정도로 정적처럼 느껴지는 가난한 농부의 삶을 보여 준다. 가난한 농부의 집안은 척박할 정도로 지난한 삶을 그리며, 어두운 단면을 잘 보여 준다. 주인공인 윌리엄 스토너는 가난한 농부 집안의 외아들로 태어나 아버지를 도와 농사를 지으며 살아간다. 어느 날 공무원의 추천으로 미주리 대학에 입학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스토너는 학교와의 거리를 생각해 그나마 가까운 친척집에서 일손을 도우며 학업을 이어가며 힘겨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 스토너는 농과대학에 입학을 했지만, 자신은 영문과로 전과를 하게 되고, 그의 부모는 졸업 후 집으로 돌아올 줄 알았던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학업을 계속 이어가기로 한 아들의 결심에 놀라움과 함께 마지못한 아들의 의지를 꺾지는 못한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 소설은 월리엄 스토너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파헤치고 있는 소설이다. 때문인지 한 인물의 삶을 따라가면서 시간의 흐름 속에 다양한 이야기들을 볼 수 있다. 소설 속의 대부분의 이야기는 주인공인 윌리엄 스토너의 고독한 삶의 연장선에 있는 것들이 대부분으로 펼쳐진다. 가난했던 시절의 일상과 결혼생활 속에서, 대학 교수로서의 위치도 온통 고독과 함께 숨 쉬며, 때로는 숨 막힐 정도의 외로움과 고독감을 위해 살아가는 듯하다. 때문인지 살아가는 한 남자의 고독감은 처절하게 느껴지게 한다. 가족과 함께 살아도, 수많은 제자를 가르치는 교수로서의 위치에서도 주인공의 외로움과 고독은 쉽게 떨쳐 내지 못하는 것이 읽는 내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1차 세계대전이 한참일 때,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같은 대학의 강사로 강단에 서기 시작했고, 친하게 지내는 친구 중에서 한 명이 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하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이 집필한 책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출간되었으며, 첫눈에 반한 여자 이디스와 결혼을 하게 되지만,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은 상황에서도 딸인 그레이스가 태어나지만, 딸과의 관계는 소원해지고, 대학 영문과 학장과의 마찰로 인한 갈등이 30년 가까이 부당한 처사를 견디며 강사로서의 위치만 근근이 지키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제자였던 캐서린의 박사학위 논문을 봐준다는 명목으로 사랑을 나누며 불륜을 하게 되고 캐서린은 대학에서 그만두게 된다. 그리고 딸인 그레이스는 원하지 않은 임신을 하게 되어 뜻하지 않은 결혼을 하게 되지만, 그레이스의 남편은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전사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윌리엄 스토너는 암에 걸리며 대학에서의 보장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수술과 투병생활을 하다 생을 마감한다. 생을 마감하며 마지막까지 놓지 못했던 것은 가족도 친구도 아닌 자신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출간된 책이었다.
위 내용 중에서 가장 많이 다루고 있는 부분은 고독한 결혼생활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이디스와 첫눈에 반해서 결혼을 하게 되었지만, 이디스는 부모로부터의 독립이 목적이었고, 이디스의 결혼은 부모와 떨어져 살 수 있게 하는 수단에 불과했다. 결혼 후에는 스토너가 집에 있는 것을 싫어했으며, 집에서 혼자 지내는 것을 좋아하며, 가끔은 집에 손님을 초대하는 날이면, 아닌 것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한 마음을 베풀지만, 손님들이 떠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자신의 침대에 누워 지내는 게 다반사다. 때문에 결혼생활 내내 집안일이나 식사는 모두 윌리엄 스토너가 도맡아 일을 해야만 했다. 이디스는 극도로 스토너를 싫어했다. 결혼식이 있던 날부터 일 것이다. 항상 스토너 앞에서는 아픈 척을 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스토너와 대화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스토너는 서재에서 공부를 했으며, 간이침대에서 잠을 자고 책을 보며 지내는 곳이지만, 이 마저도 이디스는 서재에 있던 책상과 책들은 모두 지하실에 처박아 놓았고, 스토너는 자신의 책들은 대학의 작은 연구실에 옮겨 놓아야 했다. 스토너는 이 결혼이 실패했다는 직감을 하게 되는 데에는 결혼 이후 한 달이 걸리지 않았다.
또한, 부부의 딸인 그레이스가 태어나지만, 이디스는 딸을 돌보지 않았다. 육아도 모두 스토너의 차지가 되었고 그레이스는 아버지의 헌신적인 보살핌을 받으며 훌륭하게 성장하게 된다. 그레이스는 늘 아버지인 스토너의 서재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스토너와 대화를 하며 행복하게 생활을 했지만, 이디스는 그 마저도 못마땅하게 여겨 부녀 사이를 떼어 놓게 되고, 이디스는 그레이스를 자신의 통제 속에 가둬 놓게 된다. 결국 그레이스는 스토너의 제자와의 사이에 임신을 하게 되고, 결혼을 하게 된다. 그레이스는 임신을 통해 결혼을 하면 어머니인 이디스로부터 독립과 자유를 얻게 되리라는 계산이었던 셈이다. 아버지인 스토너의 고독감은 그대로 딸에게 까지 심어 주게 된다.
또한, 스토너는 올바른 교육자로 올곧은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인물로 보인다. 집에서의 스토너와 교육자로서의 스토너는 많이 다른 면을 보여 준다. 교육자로써 가져야 할 올바름은 결국 자신에게 화살이 되어 돌아오게 되지만, 이를 꿋꿋하게 이겨내며 인내하게 된다. 장애를 가진 학생 워커가 등장하면서 스토너는 대학 교수로서의 입지는 흔들리게 된다. 학위를 받기 위한 논문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스토너는 워커에게 논문 준비가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질책을 하고 낙제점을 주게 된다. 워커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문제를 일으킨다. 결국 워커의 논문 재심사를 위한 구두시험장이 열리지만 스토너는 꿋꿋하고 단호하게 워커의 박사 학위 불합격을 주게 된다. 결국 모든 것은 스토너의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게 되고, 워커는 다시 학교에 다니게 된다. 결국 영문학 학장과의 대립으로 오히려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되면서 30여 년 동안 불합리한 처사를 받게 된다. 불합리한 처사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내색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자신이 확과장과의 싸움에서 패배했다고 받아들이는 모습이 역 역했다. 결국 세월이 흘러 더는 못 참겠다는 생각 끝에 자신의 강의 시간표와 교육 방식을 바꾸게 되면서 승리하게 된다.
스토너는 무기력하기만 했던 결혼생활을 파탄 나기는 두려웠던 것 같다. 이디스와 결혼 생활은 불안정의 연속이었고, 행복과는 거리가 먼 쇼윈도 부부 같은 삶을 스토너도 이디스도 스스로에게 감내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 서로에게 아무런 감정변화도 느끼지 못할 만큼의 힘듦과 외로움 속에서 서로에게 아무런 불만도 상처도 주지 못하는 관계가 이어지면서 스토너에게 뜻하지 않은 인연이 찾아온다. 그의 오랜 제자이면서 같은 대학의 강사를 하고 있던 캐서린이 자신의 논문을 봐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나타냈고, 스토너는 이를 흔쾌히 받아들이면서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스토너는 캐서린의 집을 드나들면서 수많은 밤을 함께 보내게 되고 학교에 소문이 퍼지고 이디스도 그 사실을 알게 되지만, 서로에게 역시 무덤덤한 반응으로 대응한다. 부부 사이에 아무런 감정이 없는, 그냥저냥 남 대하듯이 하는 짧은 대화 속에서 서로의 감정을 알 수 법하다. 결국 캐서린은 대학을 떠나고 스토너는 일주일 동안 몸이 아파 강의를 이어 나가지 못하게 된다. 책 속에는 캐서린에 대한 상세한 정보는 다루지 않는다. 오로지 상황이 주는 장면 장면에만 집중하고 있는 탓일 것이다.
스토너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대학 나에서는 이미 괴짜로 인식되어 가고, 잘 알아듣지 못하고, 점점 완고한 성격으로 바뀌어 간다. 그는 퇴임할 때까지 부교수라는 위치에 머물러 있었고, 오로지 교육자로써 가지는 긍지와 자존심만은 끝까지 지킨 인물로 묘사된다. 두 번의 세계대전에서도 그는 학교를 지켰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뇌하고 고민하는 모습 속에서도 그의 고독감은 흔들림 없이 이어지는 모습들을 그리고 흔적들도 엿볼 수 있는 부분들도 알 수 있다. 다만, 스토너는 교육자로써의 본분은 지켰을지 모르겠지만 가정사를 통해서 본모습은 정반대의 성향을 보면서 답답함과 안타까움이 들었다. 결혼 생활 속에서도 화를 낼 법한 상황임에도 화를 내기보다는 극도의 침착함을 유지하는 모습이나 서로에게 무덤덤한 대응으로 일관된 모습들이 조금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스토너는 이디스를 이해하는 모습보다는 그냥 포기했다는 무미건조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모습에 읽는 나 스스로에게도 가슴 한 곳에 알 수 없는 묵직함이 느껴졌다.
윌리엄 스토너 본인은 이디스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신은 타협을 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타협과 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스토너는 다른 사람과 이해관계가 없는 상태에서 그리고 서로의 교감이 없는 상태에서 타협을 했을 듯하다. 때문에 자신은 불합리한 여건 속에서도 자신의 의견은 피력하지 못하고 오로지 감내하는 것이 타협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자신에게 그리고 세상에 타협했다고 말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타협은 절충으로써 서로 협의가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본인 스스로의 타협은 그냥 자신이 편하자고 얘기하는 부분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소설은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윌리엄 스토너의 생이 마감할 때까지 오로지 한 남자의 안타까울 정도의 고독감을 유감없이 발휘되어 조금은 우울함이 느껴질 정도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고독감은 납득할 만한 정도라고 볼 수 있다. 때문인지 소설은 깊이를 알 수 없이 빠져들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는 소설이라 말할 수 있을 듯하다. 존 윌리엄스 작가는 잘 모르지만 이 소설 한 편으로 그의 필력을 느낄 수 있을 듯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끊임없이 부딪치는 충돌과 그 속에서 알 수 있는 섬세한 묘사가 느껴지는 듯하다. 좋은 책 한 권 읽은 느낌이랄까. 마지막 한 페이지를 넘기며 나에게도 고독감이 밀려오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인상적인 문장
자네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되기로 선택했는지,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 잊으면 안 되네. 인류가 겪은 전쟁과 패배와 승리 중에는 군대와 상관없는 것도 있어. 그런 것들은 기록으로도 남아 있지 않지. 앞으로 어떻게 할지 결정할 때 이 점을 명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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