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소설로 그린 자화상2-성년의 나날들
저자 박완서 / 웅진지식하우스 / 2005.09.14 출간
아주 오랜만에 종이책을 읽었다. 그간 오랫동안 전자책만 읽어 온 터라 종이책을 얼마만에 만지는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이지만, 페이지 한 장, 한 장 넘기는 재미와 묘미 또한 아주 오래만에 느껴본다. 또한 리뷰할 책은 집에 있는지도 몰랐다는 사실이다. 우연히 책장의 꼭대기 한 켠에 있는 것을 보고 스스로에게 놀랐고, 이 책을 발견할 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순간이였다. 이 책이 왜 여기에 있지? 스스로에게 되묻고 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나지 않는 자신에게 몇 번이고 되뇌였지만 알 길이 없었다. 그러지 않아도 전편을 읽고 나서 빨리 후편을 준비해야 겠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바쁘다는 핑계삼아 미뤄지고 있는 상황이였다. 다행이라고 생각해야겠지만, 책장에서 꺼낸 책을 책상 한 쪽에 두고 읽을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했다. 읽고 있는 책이 있었기에 바로 읽기에는 어려운 상황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뜻하지 못한 책을 집에서, 책장에서 찾게 되어 기분이 좋은 하루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박완서의 자전적 소설의 두번째 이야기인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이다. 첫번째 이야기인 유년기 부터 20살까지의 이야기를 그린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의 후속으로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에서는 성년이 된 소설가 박완서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20살 부터 23살 정도까지의 이야기로 방황기부터 시작하여 사회인으로써 그리고 결혼하기 까지의 이야기를 박완서 특유의 솔직하고 담백하게 이야기 하고 있다.
<그 많더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는 일제 말기 부터 광복이후, 6.25 전쟁 초기를 그렸다면,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에서는 6.25 당시인 51년 부터 53년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6.25라는 전쟁 당시 상황의 모습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전쟁이 주는 참혹함을 보여주기에 앞서서 오로지 박완서 주변의 당시 상황을 통해 전쟁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고 주변 상황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박완서가 주로 다니는 곳이 돈암동 시장거리, 명동, 청계천 등의 당시 풍경을 흥미로울 정도로 생생하게 그려놓은 부분은 전시 상황에서도 그저 먹고 살기 위한 사람들의 처절함이 주는 인간적인 면과 그 속에서도 풍요와 빈곤함이 주는 당시 삶의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이 또한 박완서 특유의 필력에서 볼 수 있는 힘이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다. 글로써도 충분히 당시 상황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세세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전편에서는 사상적 이데올로기의 갈등에 의한 가족애를 그렸다면 후편인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에서는 오로지 박완서의 정서적인 갈등과 성장과정을, 그 속에서 겪게 되는 소설가 박완서만이 느낄 수 있는 가족애를 심도있게 그려지고 있다. 두 번의 피난이 이루어지며 겪게되는 이야기와 6.25라는 전쟁 속에서도 그저 살기위해, 먹기위해 싸워야 하는 상황을 밀도있게 그려진 점이 가장 흥미롭다고 할 수 있다. 박완서의 정서상의 흐름이 바뀌는 꼭지점이 두 군데 정도 등장한다. 첫째는 자신이 믿고 의지해 오던 오빠가 세상을 떠나고 부터 방황하는 박완서를 목격하게 되고, 어렵사리 얻게되는 직장인 피엑스라는 곳에 취직을 하면서 세상과 타협하며 변화를 겪게 되는 박완서를 보게 된다. 그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가족간의 갈등도 나타나지만 결국 가족을 자신이 거느려야 한다는 무게감 때문인지 변화된 모습을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이 많이 보인다.
그런 삶 속에서 가족에 대해서는 직선적일 정도의 솔직함이 그대로 전해지기도 한다. 올케와의 관계, 어머니와의 갈등들은 박완서가 직장을 다니고 첫 월급을 받으면서 갈등이 완화된다. 이것은 그동안 궁핍하게 살아 오면서 서로에게 부담으로 작용되었던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풍요로 바뀌는 순간이 되기도 하지만, 그 속에서 박완서는 또 다른 고민을 하게 되는 순간이 되기도 한다. 직장에서의 불안감은 또다른 기회로써 찾아오게 되고 직장과 가족과의 안정감으로 인해 연예로 이루어지며, 결혼을 하면서 소설가 박완서의 두번째 성년기의 이야기는 끝 맺는다.
책을 읽으면서 전편에 비해 어려움을 겪는 부분이 많았다. 이유는 방언이라고 해야 하나 사투리적인 표현이 너무 많아서 두세번을 되뇌이면서 읽어야 하는 부분이 상당히 많았다. 읽으면서도 오타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였고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단어들도 많아서 조금은 낮설움, 아니면 생소한 부분들이 많았는데, 이는 오히려 당시의 시대적인 표현을 극대화 하기 위한 장치가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현재의 문체로 변화되어 읽었다면 그 당시의 상황과 당시에 사용하던 모든 언어적 습관이 주는 재미를 못느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된다.
그리고 박완서의 필체에서 오는 변곡점이 없지는 않다, 다만 전체적으로 담담하게 담백하게 써 내려가는 전체적인 스토리 라인에는 큰 변화는 느낄 수 없다. 여기에서는 말하는 큰 변화라 함은 극적 반전이나 스토리 전개 상의 큰 목적이 없다. 그냥 박완서의 성년기에 겪었던 이야기를 잔잔하게 평면적으로 써 내려 간듯 하고 그 배경이 되는 전쟁이 주는 이야기와 그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족애을 담음으로써 소설가로써의 자신의 회고록과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어쩌면 지금의 세대에서는 느낄 수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이야기를 소설가 자신의 이야기 속에서 당시의 이야기를 전달해 주는 의미가 있는게 아닌가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라는 소설은 소설가 박완서님이 세상을 떠난지 10여년(2011년 1월 22일 79세)이 흐른 지금도 주옥같은 소설로 기억되는 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현 세대에게는 단순히 소설로써 기억되겠지만, 전쟁 당시를 보낸 많은 사람들에게는 당시를 회상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단순하게 박완서라는 이름에서 느낄 수 있는 유명세보다는 박완서라는 소설가의 진심이 담긴 한 문장 한 문장이 주는 의미는 남다를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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