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가 노래하는 곳
Where the Crawdads Sing
저 델리아 오언스 · 역 김선형 · 살림출판사 · 2019.06.14 · 영미소설
2024.11.11 ~ 2024.11.21 · 10시간 33분
‘델리아 오언스’의 소설은 이미 읽은 소설이 있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야 할 듯하다. 첫 번째 읽은 소설은 ‘칼라하리의 절규’였는데, 인상적인 소설이어서 작가를 기억하고 있던 터였다. 물론 한 권의 소설을 읽었다고 해서 작가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나름대로 좋은 인상을 가졌던 소설이어서 이번에 읽게 된 소설도 괜찮은 소설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 소설의 작가는 생태학자로 평생을 야생동물을 연구해 온 학자이기도 하고, 작가 자신이 생태학자라는 직업적 의식을 이 소설에서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일흔에 가까운 나이에 쓴 그의 첫 번째 소설이라는 점도 놀랍다.
그리고 이 소설이 발간된 시점은 2018년 8월이지만,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2019년부터 돌풍을 일으키며 단번에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출간 후 6개월이 지난 시점에는 밀리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인기을 등에 업고 결국 영화로도 제작되어 인기를 실감하게 된 소설이라는 점도 인정받은 소설이다. 개인적으로는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연출로 이 소설을 그려졌는지 알 수 없지만, 원작소설을 읽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영화는 보게 되지 않을 듯하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많은 볼거리들을 제공하는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미국 남부의 노스캐롤라이나주 아우터뱅크스의 해안 습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때는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까지를 그리고 있어서 당시의 미국 남부의 사회상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지만 배경이 되는 아우터뱅크스의 해안 습지 주변에 한정되어 있어서 조금은 제한된 미국 사회의 한 단면을 알 수 있는 수단은 적은 편이겠다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당시의 미국 남부에서 겪을 수 있는 사회적 편견이나 인종차별과 같은 화두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이 주는 의미를 더욱 가치 있게 만든 수단이 되었다는 개인적인 생각을 해 본다.
이 소설은 크게 두 가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인 카야의 일생을 다루는 성장 스토리를 그리고 있고, 다른 한 가지는 남자 친구의 죽음을 다루는 살인사건이 있다. 소설 속에서는 카야의 성장 스토리와 살인사건이 번갈아 가며, 연대별로 나누어 진행된다. 자칫 혼돈할 수 있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주된 스토리는 확연하게 구분되어 읽는대는 큰 지장 없이 읽을 수 있지만, 이야기의 흐름이 후반으로 들어서면서 한 지점으로 합쳐지게 된다. 두 이야기가 진행된다고 하지만, 대부분 카야의 스토리로 전개되어 어렸을 때부터 청년기, 장년기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모두 담고 있어서 이 소설은 절대로 중간에 끊어 읽을 수 없는 소설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주인공인 카야의 두 번째 남자친구인 체이스 앤드루스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며 형사들이 사건을 파헤치는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자칫 미궁에 빠질 뻔했지만, 후반으로 넘어가면서 살인사건의 진실은 법정에서 가려지게 된다. 특히, 법정에서 살인사건을 두고 변호사와 검사와의 대결을 그린 장면에서는 책을 덮을 수 없을 정도로 몰입하게 되어 읽는 내내 다음 장면을 생각하게 만들어 책을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을 만큼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특히, 이 소설 속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그중에 주인공인 카야의 일생을 다룬 만큼 카야를 중심으로 스토리가 전개된다. 어렸을 때부터 습지 안에서만 살아온 이야기가 주된 배경이지만, 습지 안에서의 삶은 온전히 고립 속에서 홀로 살아가야 하는 두려움, 그리고 배고픔과 외로움과의 싸움이 되었고, 그런 카야에게는 갈매기와 바다는 남다른 의미를 가지게 된다. 또한, 그런 카야를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고, 급기야 그런 카야를 바라보며 ‘마시 걸’이라는 별명을 붙이며 마을 사람들은 카야와 가까워지기를 꺼려했다.
그런 카야라는 인물에 대해서 심도 있게 그려 나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을 것 같다. 소설 속에서의 카야는 세 번 버림받은 여자이기도 한 주인공이다. 첫 번째로 가족에게, 그리고 마을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남자 친구로부터 버림을 받게 된다. 습지 안에서의 생활 자체도 힘겨움의 연속이지만, 더욱 힘든 삶은 가족이 모두 떠나버린 시점부터라고 할 수 있다. 아버지의 폭력적 행태에 어머니와 카야의 형제들 그리고 의지해 온 아버지도 결국 카야를 떠나게 된다. 그렇게 가족 모두가 떠나면서 홀로 습지 안의 판잣집을 지키며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홀로 남은 카야는 자연스럽게 마을 사람들에게 멀어지며, 마을 사람들과의 연대는 끊어지고 사람들과의 교감 없이 사람들과 마주치는 것을 기피하며 살아가게 된다. 그런 와중에 같은 또래의 테이트라는 남자아이를 만나게 되는데, 테이트에게서 글 쓰는 법과 책 읽는 방법을 배우게 되면서 둘의 사랑은 조금씩 조금씩 키우게 되지만, 테이트는 공부를 위해 도시로 떠나게 되면서 둘은 헤어지지만, 결국 카야는 또다시 버림을 받게 된다. 이렇게 카야는 철저하게 홀로 남겨지게 된다. 그리고 만난 두 번째 남자 친구인 체이스 앤드루스를 만나게 되지만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하게 된다.
극의 후반부에서 카야는 체이스 앤드루스의 죽음으로 살인자로 몰리게 되며 기나긴 법정 싸움으로 진행된다. 카야 시점으로 보는 살인이 벌어지는 당시 상황과 형사 시점에서 바라보는 살인사건의 내막을 알아가게 된다. 특히, 법정에서의 살인죄에 대한 기나 긴 변호사와 검사 간의 치열한 법정 공방은 압권이라 할 수 있을 듯하다. 카야를 변호하는 노련한 변호사는 배심원단에게 카야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편견과 그릇된 인식을 버리고 오로지 살인사건에 대해서만 판단해 달라고 호소하게 된다. 또한, 카야가 글을 읽고 쓸 줄 알게 되면서, 스토리 중간중간에 시를 읊는 장면이 여럿 등장하는데, 소설 속에서는 카야가 좋아하는 시인의 시로 표현되지만, 카야가 죽고 난 이후에 또 다른 진실을 알 수 있게 되고 체이스 앤드루스의 살인사건에 대해서 진실이 밝혀지게 된다.
카야는 테이트의 도움으로 글을 배우게 되면서 자신이 외롭게 살아온 습지를 통해서 책을 쓰며 살아가게 된다. 습지 생태계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그리고 습지 생태계에 대한 다양한 연구 활동을 인정받아 많은 상을 수상하게 되지만 여전히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꺼려하며 오로지 자신의 연구활동에만 매진하게 되지만, 그의 마지막도 습지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카야의 장례식에는 많은 사람들이 애도를 하며,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은 결코 외롭지 않게 마무리된다.
마지막 결론을 얘기하게 되었지만, 이 소설은 그리 간단한 소설이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단순하게 보면 한 소녀의 일대기를 성장하는 과정을 그리는 소설이지만, 그 속에는 가족이라는 의미와 갈등, 그리고 사회에서의 편견을 다루고 있다. 작가인 ‘델리아 오언스’는 생태학자로도 익히 알려진 인물이지만, 소설 속에서도 습지라는 환경을 배경으로 연구학자로서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습지에서의 환경이 주는 생태계를 심도 있게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는 점이 그럴 것이다. 그렇게 학자로서의 의미 속에 자신이 그리려는 소설로서의 가치를 더해서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 속에는 한 인간이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배척당하며 살아가야 하는 아픈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이야기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이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있듯이 남들이야 어떻든 오롯이 혼자 살아남기 위한 삶을 살아가는 세상이지 않을까 안타까운 생각을 해 본다. 결국 세상은 혼자 살아갈 수 없음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어 버린 것은 아닌지. 정글 같은 도시 속에서 타인과 무한 경쟁을 하며 외롭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모습이 카야의 모습에 투영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습지라는 고립되고 어려운 환경이라는 것도 결국 도시 속에서 고립되어 살아가는 힘겨운 우리들의 모습과 흡사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타인을 믿고 관계를 형성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때가 종종 있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리라, 하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관계를 맺고 이어져야 할 것이다. 관계가 이어질수록 우리는 하나씩 배워 가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인상적인 문장
대자연에, 저기 가재들이 노래하는 곳에서는 이렇게 잔인무도해 보이는 행위 덕분에 실제로 어미가 평생 키울 수 있는 새끼의 수를 늘리고, 힘들 때 새끼를 버리는 유전자가 다음 세대로 전해져. 그렇게 계속 끝없이 이어지는 거야. 인간도 그래. 지금 우리한테 가혹해 보이는 일 덕분에 늪에 살던 태초의 인간이 생존할 수 있었던 거라고.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여기 없을 거야. 아직도 우리는 그런 유전자의 본능을 갖고 있어서 특정한 상황이 닥치면 발현되지. 우리의 일부는 언제까지나 과거의 그 모습 그대로일 거야. 생존하기 위해 해야만 했던 일들, 까마득하게 오랜 옛날에도 말이야.
실패한 사랑도 타인과 이어주지. 결국은 우리한테 남는 건 그것뿐이야. 타인과의 연결 말이야. 우리를 봐. 지금은 이렇게 서로가 있잖아. 내가 아이를 낳고 너도 아이들을 갖게 되면, 그건 또 전혀 다른 인연의 끈이야. 그렇게 죽 이어지는 거지. 카야, 테이트를 사랑하면 다시 한번 모험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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