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사소한 것들
Small things like these
저 클레어 키건 · 역 홍한별 · 다산책방 · 2023.11.27 · 영미소설
2025.01.28 ~ 01.28 · 1시간 12분
‘클레어 키건’이라는 작가를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작가에 대해서 궁금해진 것은 당연한 귀결로 이어진다고 해도 좋을 듯하다. 책을 소개하는 사이트에서 책에 대한 정보와 작가에 대해서 살펴봤다. ‘가디언’에서는 “탄광 속의 다이아몬드처럼 희귀하고 진귀하다”라는 찬사를 보냈고, 그의 모든 작품들이 얇고 예리하고 우수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클레어 키건’은 작가 생활 24년 동안 단 4권의 책을 냈는데, 첫 작품은 1999년에 단편집 ‘남극’으로 아일랜드 문학상과 월리엄 트레버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고 했다. 그 뒤로 ‘푸른 들판을 걷다”, ‘말겨진 소녀’로 다양한 상을 수상했고, 이번에 출간한 소설이 네 번째 소설이다. 출간된 모든 책들이 모든 이들의 찬사를 받았고 그 명성은 현재 진행형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타임즈’에서 21세기 최고의 소설 50권에 소개되었고, 오웰상 수상 및 부커상 최종 후부에 올랐다.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책 중에서 가장 짧은 소설로 알려졌다. 또한, 이 소설은 아일랜드의 역사적인 사건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1922년부터 1996년까지 74년 동안 인권 유린 사건이었다. 종교시설 내에서 벌어진 사건이리는 점 때문에 국제적, 사회적으로 엄청남 파장을 일으킨 사건이었다. 정부의 협조하에 가톨릭 수녀원이 운영하던 ‘막달레나 세탁소’에서 저질러졌던 관리들의 부패하고 불법적인 잔혹 행위를 그리고 있는데, 한 남자의 거스를 수 없는 선택 앞에서 그의 내면의 고뇌하는 모습을 작가 사유적 상상력이 더해져 치밀하고 섬세하게 그려냈다고 봐도 좋을 듯하다. 지난겨울에 영화로도 개봉한 것도 특징이라 할 수 있을 듯하다.
이 소설의 시작 첫 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새겨져 있다.
“아일랜드 공화국은 모든 아일랜드 남성과 여성으로부터 충성을 받을 권리가 있고 이에 이를 요구한다. 공화국은 모든 국민에게 종교적, 시민적 자유, 평등한 관리와 평등한 기회를 보장하며, 국가 전체와 모든 부문의 행복과 번영을 추구하고 모든 아동을 똑같이 소중히 여기겠다는 결의를 천명한다.”
- 아일랜드 공화국 선언문(1916) 발췌
‘클레이 키건’ 작가는 소설의 첫머리에서 이런 말을 했을지 생각해 봤다.
먼저 이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대적 배경을 알아야 할 것 같다. 위에서 잠깐 언급했던 막달레나 세탁소는 당시에는 세탁기가 발명되기 전이기에 모든 일은 사람의 노동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었다. 때문에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무휴일, 무보수로 노동을 한 것이 문제였다. 또한 세탁소의 노동력은 모두 여성이었고, 대부분 매춘부 또는 미혼모로 일부는 성폭력 피해자와 고아 소녀들이 전부였다. 막달레나 세탁소는 그들을 보호하면서 교화한다는 명목으로 이들을 수용하여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기간 동안 796명의 아이들이 정화조에 묻혔고, 인권을 침해하며 착취한 사건이다.
단순하게 보이는 것들만 보는 것만으로도 충격 그 자체이지만, 여성 폭력이나 인권 유린은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도 크나 큰 이슈로 비춰지는 일들은 비일비재 일 것이다. 때문에 아일랜드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자행되는 인권 유린에 대한 ‘클레이 키건’ 작가가 바라보는 국제 사회에 던지는 화두는 더욱 선명하게 그려지고 참담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때문에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서의 느낌은 그런 감정을 스스럼없이 대면하고 있지만, 담대하게 그려지고 있는 것 또한, 작가의 감정을 다스리고 있다는 생각을 읽는 내내 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책에 대해서 얘기해 보자.
주인공 펄롱은 아내와 다섯 딸을 둔 기독교 신자이며, 석탄과 딸감을 공급하는 남자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평범한 가장으로 등장한다. 시대적 배경은 1985년, 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경제 상황이 무너지고 대부분의 국민들은 먹거리가 없어서 혹독한 시기를 보내게 된다. 그런 시기에 펄롱은 주민들과의 마찰을 피하고 오로지 딸들을 잘 키워서 도시의 유일한 여학교인 세인트 마가릿 여학교를 졸업하도록 뒷바라지하는 것을 목표로 열심히 살아가는 소시민으로서 살아가게 된다.
펄롱은 석탄을 공급하고 있는 수녀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상을 목격하고부터 괴로움을 느끼게 된다. 석탄 창고에 감금된 자신의 딸들과 같은 비슷한 또래의 소녀들을 보게 된다. 도와 달라는 소녀들을 보며, 어쩌면 나의 어머니일 수도, 자신의 딸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게 된다. 하지만 펄롱은 수녀원에서 자행되고 있는 사실을 알면서도 쉽게 밝히기를 두려워하게 된다. 또한, 자신의 딸들을 보낼 수녀원에서 운영되고 있는 세인트 마사릿 여학교에 대해서도 진실을 알아차리고 참담함을 목도하게 된다.
하느님의 은총을 베푸는 수녀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묵과할 수 없는 이유가 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쉽지 않은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벌어지게 될 앞 일들에 대해서 마주할 자신은 없다. 자신의 가족을 지켜야 하는 생계와도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어머니가 미혼모인 사실을 알면서도 가사도우미로 일하게 했던 미스지 월슨은 그의 집에 머물게 하며 보살폈던 일들과 자신에게 친절을 베풀어준 것들과 격려했던 일들에 대한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것들의 사소한 것들을 되새기게 된다.
도시 전체와 수녀원이 한통속으로 권력에 대해 저항해야 하는 용기를 낸다. 한 소녀를 집으로 데려다주는 순간, 다시는 돌아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펄롱은 자신의 소신 있는 행동을 보임으로써 사회로부터 받아야 했을 차별과 따돌림, 그리고 가족의 생계에 적잖이 문제가 될 수 있음을 감수하더라도 소녀를 도와야겠다는 마음에 행동을 하게 된다. 만약 소녀를 외면했다면 평생 가져야 하는 죄책감과 수치심을 안고 살아가야 했을 것이다. 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 양심을 버렸겠지만, 펄롱은 그렇지 않았다. 사회 이기주의가 만연한 현 세태들에 작지만 의미 있는 불빛을 희미하게라고 밝히려 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찌 보면 사소하게 보일 듯 하지만, 자신의 작은 노력으로 밝은 세상을 꿈꿔 온 것일 수도 있으리라.
이 소설은 한 시간 정도면 완독 할 수 있을 만큼 짧은 단편소설이다. 어떤 이는 한 번 더 뒤돌아가 다시 읽는 이도 있을 정도로 짧은 소설이다. 하지만, 짧은 소설 속에 보여주고자 하는 주제의식은 너무나도 소중하고 중요했다. 주인공 펄롱은 현실 사회에서 눈 감고 지나쳐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을 것들에 고뇌를 한다. 자신이 겪게 될 모든 것들에 마주하는 것들에 두려움을 감수해야 하는 것들에 돌아서지 않았다. 작가는 뚜렷한 주제의식 속에 인간이 마땅히 누려야 하고 지켜져야 할 인권에 대해서 담담하게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소설을 통해서 그저 알지 않아도, 지나쳐도 크게 이상하지 않을 것들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사소하게 치부될 수 있는 것들을 세심하게 배려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역사적 사실들에 장황되게 설명하지 않아도 간결한 문장으로 알 수 있는 것들이 대단히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점에서 작가 클레어 키건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이 나에게 큰 소득이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인상적인 글
최악의 상황은 이제 시작이라는 걸 펄롱은 알았다. 벌써 저 문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는 고생길이 느껴졌다. 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이미 지나갔다.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 평생 지고 마주하게 될 고통은 어떤 것이든 지금 옆에 있는 이 아이가 이미 겪은 것, 어쩌면 앞으로도 겪어야 할 것에 비하며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기 집으로 가는 길을 맨발인 아이를 데리고 구두상자를 들고 걸어 올라가는 펄롱의 가슴속에서 두려움이 다른 모든 감정을 압도했으나, 그럼에도 펄롱은 순진한 마음으로 자기들을 어떻게든 해나가리라 기대했고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세상은 너무 크고, 그 안의 어떤 존재들은 너무 작기 때문에 어쩌면 자기가 너무 작은 존재라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고 펄롱에게 뒤에서 작고 소박한 사랑밖에 줄 수 없었던 네드처럼 겉으로 드러난 것은 보잘것없지만 화려하거나 열렬하거나 명확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 안에 숨겨져 있는 것은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클 수 있다는 것을, 클레어 키건의 조용한 글이 낮은 소리로 들려준다. 춥고 어두운 겨울밤에 따스한 슬픔의 불빛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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